꿈에 그리던
공기업에 합격하다
다들 군대에서는 몸 건강히 전역하는 것이 최고라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전역 후 취업하고 싶은 기관에서 요구하는 자격증을 딱 하나만이라도 따보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처음 따낸 자격증이 워드프로세서 1급, 컴퓨터활용능력 2급, 한자능력검정 2급이었다. 전역하고 부터는 본격적으로 취업을 위한 자격증 공부에 매진했는데, 당시 가장 절실했던 것이 ‘토목기사 자격증’이었다. 그렇게 학교수업과 자격증 공부를 병행한지 6개월, 나는 꿈에서나 보아 왔던 ‘토목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내 인생 첫 번째 국가기술자격증이자, ‘기사’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자격증. ‘국가에서 정식 인정한 기술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한동안 자격증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며 뿌듯해 했던 기억이 난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즈음 나는 한 남자 연예인을 롤모델이자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매달 TV광고 한 편씩을 찍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분야에서 저만큼 인정받을 수 없을까?’ 그래서 그가 광고 한 편을 찍을 때마다 자격증 하나를 더 취득하겠다는 다소 황당하면서 무모한 목표를 세웠다. 결국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같은 해에 건설재료시험기사, 전산응용토목제도기능사를 추가로 취득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 해는 소원하던 한국ㅇㅇ공사 신입사원 모집공채가 있던 때이기도 했다. 당시 대학 3학년에 공사 입사시험을 제대로 준비한 적도 없었지만, 에멜무지로 시험을 보았다. 그런데 시험지를 본 순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놀랍게도 그간 공부해왔던 ‘토목기사’, ‘건설재료시험기사’ 기출문제의 상당수가 같은 유형으로 출제된 것이다. 그렇게 필기시험을 무난히 넘겼고, 운이 좋게도 면접시험까지 연속으로 통과해 2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국ㅇㅇ공사의 일원이 되는 꿈을 이뤘다. 준비된 자에게 오는 행운이 정말 있다면, 이런 것일까. 정말 말 그대로 국가기술자격증을 통해 내 필생(畢生)의 목표를 이루게 된 것이었다.
토목직 공무원이 되다
이후 나는 개인사정으로 한국ㅇㅇ공사에 입사하지 못하고, 토목직 공무원으로 진로를 변경하게 됐다. 2009년만 하더라도 기술직 공무원 시험에서 토목기사는 5점, 정보처리기사는 3점의 가산점이 있었다. 알다시피 공무원시험은 0.5점 차이로도 당락이 결정되는 피 말리는 경쟁이 아닌가. 나는 토목직 공무원시험과 정보처리기사 준비를 병행하기로 결심했다.
‘정보처리기사’는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공학 등 정보처리 관련 지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자격증이다. 정보공학 분야에 문외한인 나는 캐시메모리(Cache Memory), 임베디드SQL 등 난생 처음 듣는 생소한 용어에 잔뜩 애를 먹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 공무원 시험일 한 달여를 앞두고 자격증을 손에 넣었고 공무원 시험에도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토목기사’, ‘건설재료시험기사’, ‘정보처리기사’, 그리고 필기시험에 합격한 ‘콘크리트기사’는 내가 한국ㅇㅇ공사와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는 데에 당연, 수훈 갑이었다. 자격증은 단순히 0.5㎝ 두께에 불과한 작은 수첩이 아니었다. 자격증은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한 사람의 땀과 열정이 집약된 마법의 수첩이었다.
직장 내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기술사 자격증 취득을 꿈꾼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직장생활과 기술사 시험을 병행한다는 것은 정말 이중고, 삼중고를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무엇보다 기술사 시험을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상사에게 시원하게(?) 깨지기라도 한 날이면 술을 벗 삼아 잠들곤 했다.
막대한 학습 분량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하지만 나와의 약속을 깰 수는 없었다. 먼저 핵심내용 위주로 요약·정리해 수첩에 메모해두는 등 학습분량을 최소화했다. 출제 경향과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 최근 기출문제를 활용했다. 약 10회 이상 출력해두었다가 잠들기 전, 새벽시간, 출퇴근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공부했다. 내 인생에서 이때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지하철에서는 답안지를 작성할 수가 없으니, 눈을 감고 문제를 떠올린 뒤 머릿속으로 정답을 열심히 써내려갔다. 기술사 시험은 소위,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들 한다. 즉,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합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나야말로 턱없이 부족한 실력으로 3년 만에 최종합격을 했으니, 운칠기삼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다. 나는 ‘토목시공기술사’ 자격증 취득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유일한 자격증 보유자가 되며,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항상 ‘끊임없이 노력하고, 인내하며, 겸손하자’ 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실천 수단이 바로 ‘자격증 취득’이 아닐까. 2006년 워드프로세스 1급으로 시작한 자격증 취득은 2015년 토목시공기술사로 꽃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내 인생도 자격증과 함께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얇은 수첩에 불과한 자격증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결정짓는 소중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내 인생은 언제나 자격증과 함께 할 것이다.
‘고맙다. 자격증, 내 평생 동반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