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풂이 곧 미덕인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거절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누군가의 부탁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NO’라는 말 대신 ‘YES’라고 대답하기가 일쑤.
‘착해서’ 혹은 ‘모질지 못해서’라는 이유를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지만 과연 사람들의 평판도 그럴까?
‘착한 사람’이 아닌 ‘쉬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지나친 배려는 삶에 부작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부탁 받는 일에도 컨트롤이 필요하다.
글. 김혜민 / 일러스트. 김수진
참고.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할까? (김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거절할 때는 먼저 공감을 표현하라
우리에게 거절은 부정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나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의 요청을 거절한다는 의미로만 생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절은 늘 힘들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좀 더 세련된 시각으로 거절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 거절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고려하면서도 (상대방의 의견과 반대일 수 있는) 내 뜻을 전달하는 기술’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브리징 테크닉(Bridging Technique)’, 곧 다리 놓기 기술을 살펴보자.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공감을 나타낸 후, (상대방의 입장과 반대되는) 나의 입장으로 연결하기 위한 다리를 놓는다. 가령 상사가 내 뜻과 반대되는 일을 지시했을 경우 “좀 더 큰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은 “여기에서 이런 점을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와 같은 말을 더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즉 거절은 가장 마지막에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누구나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따라서 직언이나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면 나의 의견이 그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맥락에서 풀어내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부탁을 승낙할 때도 조율을 하라
수용하기 힘든 부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떠올려 보자. 요청의 정도를 10으로 봤을 때, 처음부터 10을 받아들이게 되면 상대방은 앞으로도 이만큼 힘든 부탁을 자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상대방의 잘못도 있지만 그렇게 하도록 만든 나의 잘못도 크다.
마음속으로만 불편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그 문제를 짚어주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것이 미안한 행동이 아니라 ‘당연한’ 행동으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설득의 심리학>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 박사가 제안하는 양보안을 사용해 보자. 들어주기도, 거절하기도 힘든 부탁의 경우 0과 10 사이에서 적절한 수준의 양보안을 제시하며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도와주고 싶다는 의사는 명확히 해야 한다.
다만 10 만큼을 들어주기는 힘들다고 이야기하면서 5~7 정도의 수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부분은 현재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힘듭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하는 정도라면 도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등으로 조율을 하는 것이다. 정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도움을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다.
거절을 당할 때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거절이 상대방의 부탁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전달하는 행위라면, 부탁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상대방에게 요청하는 행위다. 언뜻 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거절과 부탁은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마음이 약해’ 거절을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도와 달라 부탁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살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는 없다. 따라서 상대방이 거절하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항상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연봉 협상의 상황이라 가정해 보자. 원하는 만큼의 연봉협상에 실패한 당신은 회사가 교육비용의 일부를 부담해주면 좋겠다는 차선책을 제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영향력의 순간’이다. 이는 나의 요청을 상대방이 거절하고, 내가 양보한 바로 그 순간에 차선책을 제시해야 효과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 즉, 영향력의 순간이 지난 다음에는 똑같은 내용이더라도 수락의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