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풍노도 소녀, 위풍당당 용접기능인이 되다
    제7회 베스트 오브 챔프 데이(Best of CHAMP Day) 대상 수상자, 디에스씨 용접공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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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현장에서 뛰놀던 기억들이 오랫동안 방황하던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제도권에서 벗어나 뛰어든 용접의 길.
쉽게 무너질 마음이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이기에 조금은 특별한 20대 용접기능인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글. 김민정 / 사진. 이승훈

 

평범하지 않은 선택
질풍노도 열일곱 x 재능 = 예술 고등학교로의 진학.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잘한다는 주변의 칭찬이 기분 좋았다. 남들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한다지만, 망설임이랄 게 없었던 시절. 그에게 첫 번째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재능을 따라 예고 진학이 결정된 후, 남해 고향을 떠나 진주로 향하는 길, 선택이 자연스러웠듯 삶도 평범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런데 질풍노도의 시기가 그에게는 유별났을까. 입학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돌연 자퇴를 결심했다. 기숙사 생활을 비롯해 야간 자율학습까지 진행되는 빽빽한 일정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남해 고향에서, 우리 딸 그림 실력이 제일 자랑거리였던 아버지에게도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어머니는 제발 학업만은 마쳐달라며 간곡히 부탁했지만, 결심한 이후로는 마음을 되돌리기가 힘들었다.

그때 아버지가 딱 한 마디 거드셨다. “동네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 다신 얼굴 볼 생각 말아라.” 여느 부모님이 그러하듯 자식 자랑이 하나의 즐거움이라, 딸의 돌발행동에 걱정과 한숨이 뒤섞인 말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때는 무작정 벗어나고 싶었고, 선택이 어떠하든 뒤돌아 볼 여유는 없었다. 자퇴 후, 제도권에서 벗어났다는 사실과 후련함이 몰려올 뿐이었다.

인근 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쓰고, 다시 자퇴를 반복하기까지.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깨달았다. 혼자 방에 멍하니 누워있을 때면 온갖 잡념이 몰려왔다.
‘아, 모르겠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방황하던 시절, 누군가는 그에게 답이 없다고 질타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유일하게 믿어준 오빠를 따라, 다시 일어설 계기를 찾았다. 잘할 수 있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자 마음먹었을 때, 불현듯 어릴 적 가장 신나는 놀이터였던 아버지의 목선 조선소가 떠올랐다. 근처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추위를 피해 불을 지피던 재미, 튀어 오르던 불꽃, 현장 작업자 아저씨들의 자유로운 발길들.

‘용접을 배워야겠다!’
그때의 동경을 따라 용접을 시작한 순간부터 인근 대학에서의 용접기능사 단기과정 수료, STX조선해양 기술교육원 용접기능사 과정 수료, Welder’s qualificationtest certificate(2G~4G 용접사 자격 증명)취득, STX조선해양 협력업체 취업 등 가파른 속도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편견의 경계를 허물다
그는 지난 9월, 이러한 진솔한 이야기로 공단에서 주최한 베스트 오브 챔프 데이(Best of CHAMP Day)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청중들은 그를 향해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는 용접을 하는 20대 청년 중 한 명일 뿐이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여자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편견을 허문, 보기 드문청년이기에.

“어렸을 때 아버지 일터에서 힘든 일, 위험한 일 봐왔잖아요. 눈 딱 감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처음에 학교에서 특수용접기능사 자격을 취득했는데, ‘용접 별거 아니네’ 하면서 자만했어요.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고요. 여기 들어올때는 여자라서 뽑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할 만큼 정말 간절했고, 그때부터 제대로 용접을 배우게 됐어요.”

STX조선해양 기술훈련원은 국가인적자원개발 컨소시엄을 통해 현재 조선용접과 TIG용접 두 가지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한 기수당 20~30명의 훈련생들을 선발하는데, 모집요건은 만 45세 미만의 남성이다. 자격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려는 여성 자체가 드물다는 뜻.

채용을 담당하는 최선균 과장은 나이와 성별에도 놀랐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한 그의 지원서를 보고 보통 마음가짐은 아니라고 판단했단다. 아니나 다를까 실력이 일취월장이다. 평소 원칙주의자로 유명한 박선용 훈련교사 또한 그가 지금껏 얼마나 제대로 훈련에 임했는가를 전한다.

“인이는 교육기간 3개월 동안 2G(수평보기), 3G(수직보기), 4G(위보기)를 전부 취득했어요. 전체 기수 중에 세 종목 모두 합격한 사람이 단 2명, 여자는 또 처음이죠. 용접 결함 기준이 0.003% 내외거든요. 먼지 하나만 있어도 그 기준을 넘는데, 그동안 작업한 것을 보면 비파괴 검사, RT검사에서 모두 결함 없이 깨끗해요. 가르쳐보면 확실히 습득하는 게 빠르고요. 웬만한 청년들보다 뛰어나죠.”

국제 선급 자격으로서 심사가 까다로운데다 4G(위보기)는 오랜 현장 근무자들도 어려워하는 용접 자세. 구조물의 위를 보며 작업하는 것인데 시뻘건 쇳물이 뚝 하고 떨어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멈춰버리면 다시 이어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 열기를 참아내야 한다.

“실무교육 때 쓰이는 CO2량, 전기량, 철판두께, 배우는 자세 모두 현장 그대로예요. 그래서 내 한계치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기량을 쌓는 데 도움이 됐어요. 4G는 처음 떨어지고 펑펑 울고 두 번째 시험에서 ‘이거다!’ 하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그런데도 처음 현장에서 일할 때 불안했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되든지 안 되든지 날마다 하면 된다.” 이러셨어요.
이제 그 말이 이해돼요.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는거. 매일 하는 게 최고 재능이고 실력인거 같아요.”


강한 에너지로 만든 꿈
두 번째 목표를 위해 달려온 지 어느덧 1년. 한때는 사람으로 인해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가 가진 에너지만큼이나 그를 강력히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우선은 단연 가족.

“아버지를 많이 닮은 거 같아요. 아버지가 45년을 목선 조선소에서 일하셨는데 지금까지도 일이 즐겁대요.(웃음) 취업 후에 몇 년 만에 아버지한테 전화를 드렸는데 “잘했다! 고생했다! 내 딸” 그러셨어요. 한때는 미운 딸이었을 텐데 지금은 자랑스럽대요. 만나면 “요즘 현장은 시설도 좋잖아?”하며 농담도 건네고, 일 재밌게 하라고 격려도 응원도 많이 해줘요, 아빠가.”

다만,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생활하는 만큼 기술훈련원 직원들과 동기들, 현장교사 선생님을 비롯한 동료들과의 소통도 큰 힘이다. 동료들 전부 무뚝뚝한 남성들이지만 기술에서만큼은 모두 뜻을 나누는 이들이다. 20대 여성으로서 현장 근무의 어려움도 있을 테지만 그는 너무 많은 걱정에 사로잡히지 말자고 경계한다.

“사람들은 너무 걱정이 많아요. 조금만 조심하면 되는데 위험한 건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버려요. 저는 활기찬 현장, 자유로움, 기술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좋아요. 자기 일할 만큼 하고 야드에 누워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죠.(웃음) 항상 지나다니면서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렴 하고 얘기를 해주시니까 현장적응도 빠르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요.”

손재주를 가진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이란, 선택에 따라 그림이 될 수도 용접이 될 수도 있었다. 단지, 어떠한 환경에서 기지를 발휘할 수 있는가의 차이일뿐. 그러나 너무 많은 청춘들이 나 아닌 환경, 사회적인 인식,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고민한다. 그가 20대 여성 용접기능인으로서 조명 받는 이유도 선택이 ‘평범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기에 그는 조심스럽지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자기 목적을 따라갔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보다 주위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더라고요. 저처럼 그냥 편견을 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해요. 그런 비슷한 일이라도 연결하고 연결해서 하면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결국 행복해지는 거잖아요.”

자신보다 한 술 더 뜨는 초보 용접공 앞에서 경력 23년의 훈련교사는 듣고 보니 옳은 소리라며 웃어 보인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하니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단다.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이 되었으면 한다고. 기술로 승부하니 당당하고 재미있다.

스물 넷,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삶. 강한 에너지로 만든 그의 꿈은 누가 뭐래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업데이트 2016-11-1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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