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 뻐꾹’
서울 지하철 봉천역 4번 출구 옆에 위치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는 장애인을 위한 뻐꾸기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바로 이곳에서 지난 11월, 시각장애인 박선영 씨가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비장애인도 힘들다는 합격의 기쁨을 맛 본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내가 바로 생계형 자격증 왕
“일을 하고 싶은데 취직이 잘 되지 않아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어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도 취직이 쉽지 않아서 10개월간의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하게 됐죠. 처음에는 불에 데기도 하고, 칼에도 베였지만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음식을 만들었어요. 시각에 비해 다른 감각이 발달돼서 밥 뜸 들이는 소리 같은 건 청각으로 알아차려요.”
생계형 자격증 취득을 시작한 그녀는 2016년에만 두 개의 자격증을 따며 이력서에 당당히 두 줄을 추가했다. 사실 시험 준비도 힘들었지만 시험을 치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의 불편함 때문이었다. 이 부분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배려로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요리하는 시간을 비장애인보다 1.5배 정도 더 줘요.”
52가지의 요리 중에 무작위로 2가지 요리가 출제되는 실기시험에서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동태전을 만들어야 하는데 함께 응시한 시각장애인 중 한 분이 싱크대 안에 동태가 있는 걸 모르고 따뜻한 물을 틀었다가 동태가 녹는 바람에 자르는 데 애를 먹었어요. 살을 다 발라내지 못하고 뼈째 만든 사람도 있고요. 그땐 저도 낙방했죠. 이번 실기시험에는 더덕 생채랑 섭산적이 나왔었는데요. 하나도 완성을 못하고 있다가 ‘20분 남았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요리를 완성했었어요.”
또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다행히도 기우가 되었다. 그녀는 100점 만점 기준 73점을 받아 커트라인 60점을 훌쩍 넘기며 한식조리 기능사에 합격했다.
공감이 부족한 사회에 살다
“태어날 때부터 지병이 있어서 눈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도 어렸을 때는 앞자리에 앉으면 칠판에 적은 내용들이 보이는 정도라서 일반 학교에 다녔어요. 하지만 눈이 점점 나빠졌고 5~6년 전에 백내장이 오면서 더 심해졌죠. 앞이 뿌옇게 보이니까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일반인과 일하는 것도 어렵고요.”
자신감을 잃은 그녀는 3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냥 집에 있을 수만도 없었다. 눈칫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녀는 2015년부터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의 긴 공백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눈이 안 좋다고 말하면 비장애인들은 ‘젊은 사람이 안경 쓰면 되지’ 이런 식으로 말해요. 얼마 전에도 우체국에 가서 ‘눈이 나빠서 그런데 깨지는 물건이 있으니 주의 문구 좀 써 달라’고 했더니 젊은 사람이 눈이 왜 그렇게 나쁘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 말이 상처가 되고, 실례가 된다는 걸 누구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롭게 그녀의 가슴을 관통한다. 그렇기에 혼자서 뭔가를 시도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건 사러 가면 브랜드 이름은 눈에 띄게 써놓으면서 클렌징폼, 샴푸 이런 글씨들은 너무 작게 써놔요. 가격표 찾기도 힘들고요. 확대경으로 보는 건 창피해서 꺼려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정말 속상하죠.
그녀는 눈이 나쁘다는 것을 말할 때 자신의 눈을 ‘바보 같다’고 표현했다. 이해와 공감이 부족한 사회를 사는 비장애인들의 마음 속 눈은 어떤 모습일까.
배려를 돌려주는 고추장불고기 가게를 꿈꾸다
다시 사회로의 발걸음을 내딛은 박선영 씨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일을 하게 되면서 바빠졌어요. 그래서 요즘은 요리를 거의 못해요.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음식점에서 일하며 배운 실력을 뽐내고 싶어요. 저만의 소박한 가게도 열고 싶고요. 메뉴는 고추장불고기가 좋겠어요.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이기도 하고, 지인들도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음식과 함께 배려의 마음도 제공할 거라고 말했다.
“저는 복지관을 알게 된 후에 자신감을 찾고 일도 시작하게 됐어요. 앞으로 저같이 일을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어요. 손님들에게 불편만 주지 않는다면 충분히 일할 수 있거든요. 저도 복지관을 통해 도움을 받았으니 배려를 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녀의 고추장불고기 가게를 그려본다. 가게는 휠체어도 드나들 수 있는 계단이나 문턱이 없는 곳이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큼지막한 글씨로 메뉴판이 쓰여 있을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가게 한쪽에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이 걸려있고, 주방에는 따뜻한 요리를 만드는 박선영 씨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