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야 낭자의 고결한 넋 어린 둑길 위에서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 벽골제 단지 여행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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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이 겨루고
단야 낭자가 지켜낸
벽골제

벽골제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저수지다. 백제 비류왕27년(330)에 축조되었다고 하는 이 제방은 우리나라 농경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데다가 흥미로운 설화까지 얽혀있다. <벽골제 전설>, <쌍용 설화>, <단야 낭자 이야기> 등 다양한 제목으로 불리는 이야기를 알고 간다면 현실과 환상, 정사와 야사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걷는 재미까지도 벽골제 둑길 위에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를 흙으로 메운 새만금 간척사업의 중심도시인 김제. 그곳에는 일찍이 땅에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성한 저수지 벽골제가 있었다. 흙이 물이 되고 물이 흙이 되기도 하는 순환의 역사가 김제에 고스란히 뿌리내려 있다. 길게 늘어선 수로 따라 걸음을 옮기며 잠들어있던 이곳의 과거를 깨운다.

단야 낭자 설화
신라 원성왕 때의 일이다. 오래된 벽골제를 보수하기 위해 김제로 파견된 원덕랑은 벽골제 주변에 살고 있던 청룡의 방해로 공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 백룡이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상황에  김제 태수는 원덕랑을 찾아온 약혼녀 월내를 공녀로 삼을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원덕랑을 사모하고 있던 김제 태수의 딸 단야 낭자가 제물이 되기를 자처했고, 그 희생을 알게 된 백성들이 후세까지 낭자의 넋을 기렸다고 한다.
 

벽골제 단지의 정문인 벽골지문(碧骨之門)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단야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누각인 단야루와 단야의 영정을 모신 단야각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제방과 함께 사적 제111호로 지정된 중수비가 있다. 비석의 오른쪽 방향에는 벽골제의 다섯 수문 중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남은 장생거도 보인다. 잔디가 깔린 제방 언덕 위로 올라서면 유유히 흐르는 저수의 푸른 물결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요히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에 스치는 억새소리가 단야 낭자의 비단결 같은 마음씨를 노래하는 것처럼 들린다.

둑길을 따라 걸으면 저 멀리서부터 대형 쌍용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철골에 대나무를 엮어 만든 용 두 마리는 설화 속 한 장면을 현실로 옮겨놓은 것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저녁 6시가 지나면 청과 백의 조명이 용들의 몸 위로 드리워지는데 그때야 비로소 어느 쪽이 청룡이고 백룡인지 알 수 있다. 용들의 발톱에 묻은 새빨간 조명은 둑을 지키려 했던 백룡과 둑을 파괴하려 했던 청룡 간 처절한 사투의 흔적 같다. 제방에 올라서서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쌍용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백성들의 생업기반인 벽골제를 지키고자 했던 단야 낭자의 비장함이 전해지는 듯하다.
 



우리나라 농경사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벽골제 단지 내에는 단야 낭자가 지키려 했던 백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바로 농경문화박물관과 농경사주제관·체험관이다. 박물관이 과거의 유물과 역사를 전시해놓은 곳이라면, 주제관과 체험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농경문화를 직접 탐방하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조성한 일종의 학습관이다.

농경문화박물관은 인류 문명의 토대가 되어온 농경 전반의 역사와 농경사회의 중심에 있었던 벽골제의 위상이 총망라되어 있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우리 농경사의 흐름을 익힐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농경사주제관과 체험관은 박물관에서 익힌 농경사를 가슴에 품은 채 한 번 더 복습할 수 있는 공간. 주제관의 상설전시는 시대별 농업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고, 체험관에서는 다양한 놀이로 농경사를 학습할 수 있어 유익하다. 특히 이곳의 3층 전망대는 단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벽골제 여행에서 빠져선 안 되는 코스 중 한 곳이다.
 


볏골에서 피어난
예술과 문화의 향기

김제의 옛 이름은 벽골군. 벼의 고을을 뜻하는 ‘볏골’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농경 중심지역으로, 그 명성에 걸맞게 예술과 문화 역시 융성했다. 진경산수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벽천 나상수의 뿌리가 김제이며,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무대 또한 이곳. 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 또한 벽골제 단지 내에 자리한다.

김제 용동 출신의 벽천 나상목(1924-1999)의 작품을 전시한 벽천미술관은 지그재그 형태로 자연사물을 배치해 간결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아리랑문학관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작중 무대가 된 김제의 문화사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2003년에 건립되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작중 배경을 김제로 택한 것은 일제의 산미증식 계획에 의해 수탈당한 대표적인 곡창지대이기 때문이라고. 그만큼 일제에 저항하는 민초들을 많이 낳은 토지로서도 의미가 깊다.

현재의 우리에게 과거 문화와 그때의 숨결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곳, 김제. 눈앞에 펼쳐진 것들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마저 잔뜩 안겨주는 이곳에서 여행객의 사색은 더욱 짙어진다.
 



 

업데이트 2017-04-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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