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네 삶은 ‘갑’과 ‘을’의 치열한 전쟁으로 점철되고 있다. 건물주와 세입자, 청년들의 취업전쟁, 직장 내 눈치 싸움, 승진전쟁... 모든 순간이 짠내 나는 삶의 기록이다. 출근길 만원버스에 탄 구겨진 몸이, 취업을 위해 도서관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이 한 편의 드라마로 인해 조금은 즐거워지기를 기대해본다. 현실은 이토록 무겁지만 그래도 여정의 종착지는 웃음꽃이길 바라며….
<자체발광 오피스>는 최근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다. 길어야 6개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계약직 신입직원 은호원이 가구회사 ‘하우라인’에 입사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배우 고아성이 대한민국 청춘을 대변하는 계약직 신입사원 은호원 역을, 하석진이 까칠한 마케팅팀 팀장 서우진 역을 맡아 극 중에서 대립각을 세운다. 여기에 이동휘, 이호원, 김동욱 등 각양각색의 배우들이 직장 속 파란만장한 에피소드를 그려내고 있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사무실 내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핫’한 주제다. 그만큼 직장이라는 곳이 갈등과 대립이 첨예한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체발광 오피스>에서도 ‘을’로 대표되는 신입사원의 씁쓸한 비애가 그려진다. 은호원은 입사 첫날부터 부장에게 갖은 독설을 들으며 ‘내가 이러려고 대학 졸업까지 했나’ 자괴감에 휩싸인다. 남들 다 갖춘 스펙을 채우지 못한 ‘결점’으로 인해 벼랑 끝에 선 계약직원들에게 악덕 상사는 혹독한 말을 쏟아낸다.
불쌍하고 안쓰러울 정도로 고군분투해야 할 계약직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은호원은 우리가 갑(甲)이라 생각하는 회사에 폭탄발언을 쏟아낸다. 면접관의 질문에 “몰라서 물어요? 학자금 대출에 집세도 내야하고 먹고 살기 힘드니까 왔지! 먹고 살려고 지원했습니다!”라고 말하고, 회사에 인생을 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에는 “아저씨들은 회사에 인생을 걸고 다녀요?”라고 맞받아쳐 속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외에도 <자체발광 오피스>는 취준생이나 구직자들이 한번쯤 하고 싶었던 사이다 대사를 쏟아낸다. “누군 부자로 안 태어나고 싶어서 안 태어났냐! 누군 취직 안 하고 싶어서 그랬냐”, “생각 없고 근성 없는 사람인지 그깟 이력 몇 줄로 어떻게 다 아세요?”, “몰라서 그랬으면 가르쳐주면 되잖아. 가르쳐 주시면 잘 할 수 있어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가슴에 콕콕 꽂히는 이 대사들은 대부분 상상신으로 처리되곤 하지만 회사 내 부조리와 계약직의 열악한 실태에 대한 공감으로 시청자들의 폭풍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드라마 속 ‘을의 반란’은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현실을 그대로 옮긴 리얼한 에피소드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 오늘만 사는 ‘슈퍼 을’ 은호원의 사이다 활약 등이 맛깔나게 어우러져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판타지가 마냥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드라마 속 신입사원 3인방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참고 인내하기만을 강조하는 시대. 하지만 아프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청춘이란 이름으로 그동안 감내해왔던 많은 아픔들을 이렇듯 속 시원한 드라마 한 편으로 조금이나마 덜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