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한시적 유행코드를 넘어서 지속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런 힐링과 단짝친구처럼 붙어 다니는 것이 바로 자연.
뛰어난 상담가의 카운슬링보다도, 때로는 아무 말 없는 자연에서 우리는 더 큰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일과 사람에 부대끼며 주중을 보낸 뒤,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여유를 원한다면 이곳, 파릇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김해 화포천 일대가 당신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물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는 곳희망을
화포천은 김해시 진례면 대암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화포천습지는 화포천 중류부터 시작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하천형 습지에 해당한다. 습지는 말 그대로 축축한 땅으로 물과 땅이 뒤섞여있는 곳. 지상생물과 수중생물등 다른 어느 곳보다도 풍부한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다.
화포천습지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사람의 손으로 오염된 곳이라도, 노력하면 다시 깨끗한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음을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한때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버려진 땅이었지만 정부와 시민들이 합심하여 노력한 끝에 환경을 되살려 조성한 것이 바로 화포천습지생태공원이다.
화포천습지생태공원은 경관과 생태를 고려하여 큰기러기뜰, 노랑부리저어새뜰, 노랑어리연꽃뜰, 창포뜰, 물억새뜰 총 5개 구역으로 나뉜다. 5월이면 노랑어리연꽃이 수면을 한가득 노랗게 물들이고, 물가의 창포도 수면 위로 다소곳이 그림자를 늘어뜨린다. 가을에는 억새가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감성을 더한다. 겨울은 철새들이 찾아와 봄을 기다리며 잠든 식물들을 대신하여 생기발랄함을 뽐낸다.
여름이 성큼 다가선 요즘은 무성한 초록이 습지를 가득 메워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땅이 아닌 물에서 솟아오른 풀은 더욱 건강하고 생생한 자연을 눈으로 즐기게 한다. 수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왕성하게 풀이 돋은 수상풀밭 위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풀이 너울거리며 초록빛 파도를 일으킨다. 풀잎이 사각거리는 싱그러운 소리가 가슴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 고개를 어디로 돌리든 막힌 데 없이 탁 트인 녹색 습지는 자연을 한껏 몸 안에 스며들게 한다.
고요한 평화가 있는
휴식의 길
화포천습지생태공원은 국가생태문화탐방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화포천 아우름길을 끼고 있다. 아우름길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진영읍 봉하마을과 습지공원 일대에 걸쳐 방대하게 펼쳐진 트래킹 코스. 봉하화포길, 대통령길, 버들길, 넓은뜰길, 물꽃길, 강따라길, 만남길 총 7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아우름길 코스 표지판에 각 코스별 거리와 주요 거점이 표시되어 있으니 각자 여건이나 취향에 맞는 길을 골라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기면 된다.
아우름길 곳곳에는 노란 바람개비가 서있어 여행객의 길목을 화사하게 밝혀준다. 몸으로 직접 느끼기도 전에 저 멀리서부터 멈춰있던 바람개비가 하나씩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바람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마치 직접 바람을 몰고 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길가에 죽 늘어서 피어난 알록달록 들꽃은 혼자 걷는 사람과도 말없는 길벗처럼 길의 끄트머리까지 동행한다.
혼자 길을 조용히 걷다보면 자연 속에서 명상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누군가와 같이 걸을 경우엔 자연풍광을 함께 즐기다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하나둘 편하게 꺼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걸어서는 힘들지만 자전거를 타고 하루 만에 아우름길 전 코스를 완주하는 목표를 세워보는 것도 좋다. 코스의 대부분은 기찻길과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데, 드문드문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이대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즐기는
다양한 생태체험
화포천습지생태공원의 중간쯤에 자리한 화포천습지생태학습관은 습지의 생물을 관찰하고 직접 체험도 해볼 수 있는 장소이다. 총 3층 높이로 지어진 학습관의 계단 벽면에는 해마다 개최하는 사진대회의 수상작을 걸어놓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잠깐의 시간도 액자 속 화포천습지의 아름다운 풍경에 눈을 빼앗겨 지루할 틈이 없다. 전시관에서는 습지 생물 관련 전시와 유치부, 초등부 그림대회 수상작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생태공원 전경을 조망하는 것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학습관은 화포천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관장한다. 철마다 색다른 매력을 뽐내는 화포천습지이니만큼 프로그램도 계절별로 각양각색. 홈페이지에서 미리 신청하면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꼼꼼하게 습지를 탐방할 수 있다. 여름철이면 반딧불이가 어둠 속을 수놓는 풍경을 구경할수 있는 축제가 열리고, 겨울에는 야생의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희귀한 경험을 해볼 수도 있다.
김해 화포천을 구석구석 빠짐없이 관찰하고 싶다면 아우름길 스탬프투어를 적극 추천. 학습관이나 봉하마을 관광안내소에서 스탬프북을 지급받아 각 코스 중간중간에 설치된 스탬프함의 도장을 다찍어 제출하면 학습관에서 뿌듯한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화포천습지는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하루 안에서도 시시각각 모습이 변한다. 일단 가보면 한 번 방문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을 정도로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 화포천을 만날 수 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가만히 안겨 쉴 수 있는 시간이 화포천 어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