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날아든 환희
지난 5월 26일 서울대학교 글로벌 컨벤션 플라자에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제9회 소외된 90%를 위한 창의설계 경진대회’ 결선에 참여한 ‘꽃다비’ 팀. 건양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민지희(팀장, 의료신소재학과), 홍나영(의료신소재학과), 이지원(의료IT공학과) 등 3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꽃다비 팀은 의료 쪽으로 특성화된 전공을 살려 보건 분야에 적정기술을 적용, 대상의 쾌거를 이뤄냈다.
그녀들에게 영광의 순간을 안겨준 프로젝트 결과물 ‘블라섬(blossom)’은 생리대를 구입할 수 없어 나뭇잎, 말린 진흙 등을 사용하여 생리혈을 처리하며 생활하고 있는 캄보디아 여성들을 위해 개발됐다.
[민지희] “우리 팀이 호명되는 순간에는 정말 얼떨떨했어요. 단지 그들이 가진 문제에 대해 공감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였거든요. 그래서 더 기쁨이 컸어요.”
팀의 리더 역할을 했던 지희 학생은 블라섬 설계 과정을 기분 좋게 회상했다. 팀원 모두 여학생이라 생리에 대한 기본 상식을 지니고 있었고 여성용품의 불편함에 대한 공감으로 의견을 쉽게 통일하여 빠르게 설계에 접목할 수 있었다.
[홍나영] “소외계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가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과 만나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저희 모두가 진심을 다해 설계한 블라섬이 누군가에게 빛을 발휘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꽃 같은 마음을 피우다
세 학생이 해외 봉사활동을 떠난 캄보디아 프놈펜의 앙찬마을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특히 여성 인권에 대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렇다 보니 남성들은 여성의 생리에 대해 관심이 없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그 곳에서 우연히 같은 팀으로 만난 세 학생은 한국에 돌아온 후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생각을 듣고 공유하며 서로의 의견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다 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게 꽃다비 팀은 캄보디아 여성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삶’을 찾아주기 위해 대안 생리대에 포커스를 맞추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적정기술에 적용하는 만큼 일회성이 아닌 오래 사용할 수 있어 금전적 부담을 줄여줄 제품이 필요했고, 그와 더불어 청결하고 위생적으로 생리혈을 처리할 수 있어야 했다. 여러 대안 생리대를 조사하던 중 발견한 것이 의료용 실리콘을 사용하여 반영구적이면서도 몸에도 안전한 생리컵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생리컵은 질 입구에 손이 닿아야 하기 때문에 위생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접은 모양도 균일하지 않고 입구가 커 삽입에 대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지원] “기존 생리컵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삽입을 도와주는 보조기구인 ‘애플리케이터’를 설계했죠. 그를 통해 위생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거부감을 줄였어요. 추가적으로는 생리컵을 비울때 컵을 빼서 세척한 후 다시 끼워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밖으로 컵을 빼지 않고도 혈을 배출할 수 있는 기술을 더했어요. 좀 더 간편한 처리가 가능해졌죠.”
꽃향기처럼 퍼질 블라섬
최근 블라섬 생리컵은 협약을 맺은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캄보디아로 보내졌다. 현지의 피드백을 받은 후 보완 단계를 거쳐 최종설계가 진행될 예정이다. 나아가 꽃다비 팀은 블라섬이 더 많은 여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창업이나 기업 기술 이전 등의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블라섬은 모든 여성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에요. 하지만 우선적으로는 만들어진 목적에 맞게 소외계층의 부담을 줄이는 용도로 활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성이 가장 큰 장점이니까요.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고 소외된 여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블라섬을 더욱 보완하고 성장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적정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학업에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그 변화로 인해 더 큰 생활의 격차를 느끼고 있을 사람들을 잊고 살아간다. 세 학생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마땅한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적정기술이라고 정의하며, 그들을 위한 관심과 노력이 변화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꽃처럼 아름다운’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 ‘꽃다비’에는 캄보디아의 어린 소녀들이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꽃다비 팀 세 학생의 진심으로 피어난 블라섬이 더 넓은 곳으로 향기롭게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