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아시아키르기스스탄에서 - 찾은 꿈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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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5살에 대학에 입학한, 소위 말하는 장수생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교대에 입학했고 어느덧 3학년이 되었다. 하지만 교대생활 3년째, 수업과 과제가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고 있었다. 많은 경험을 통해 폭넓은 사고를 가져야 하는 것이 교사임에도, 교대의 특성상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학교홈페이지에서 국립국제교육원 주관의 해외 단기 교육봉사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나는 무엇에 이끌린 듯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서류와 면접심사를 거쳐 스무 명의 봉사단원이 꾸려졌다. 한국어/한국문화, 기초수학, 기초과학, 미술, 음악, 체육 등 6개 과목의 교육봉사를 진행하는데, 나는 그중 한국어/한국문화 파트를 맡게 됐다. 7월 내내 해외파견 봉사자로서의 정신, ODA*, 세계 시민의식과 관련한 사전 교육 특강을 들으며 조원들과 수업 지도안을 짰다. 열악한 현지의 수업 환경을 고려해 출국 전날까지 지도안을 수정하며 수업 난이도를 조정하고 교구를 만들었다.

교육봉사는 2주가 걸리는 보통의 해외봉사와는 달리 한 달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켁에 도착한 우리는 한국교육원 현지 통역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초등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하였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학교 이름이 번호로 되어있는데 우리가 가는 학교는 1번 학교와 66번 학교였다.

설렘과 긴장을 안고 도착한 1번 학교. 거짓말처럼 첫 날부터 사건이 터졌다. 4교시 수업 중 무장한 경찰들이 들어와서 모두 밖으로 나가라고 한 것.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학교 밖 공터로 나갔다. 상황을 알아보니 폭탄신고가 들어와 출동했다고 했다. 폭탄신고라니. 우리는 불안에 떨면서 수색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폭탄신고는 동네 주민의 오해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고 다음날부터 정상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긴장 가득한 시작이었지만 아이들과 교실 밖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던 덕에 오히려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1번 학교에서의 수업에 익숙해진 어느 날, 평소 귀여운 장난으로 우리들의 관심을 끌곤 했던 무스타파라는 아이가 옆반 친구의 목을 조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한 아이는 놀라서 그대로 집에 가버렸다. 나는 무스타파에게 현지어로 “무스타파가 친구를 괴롭혀서 마음이 안 좋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는 내용을 더듬더듬거리며 내 뜻을 전했다.

다음날부터 무스타파는 3일 동안 감기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혹시 내가 혼내서 겁을 먹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교감선생님께 그동안의 일을 말씀드리고 무스타파의 집에 전화를 부탁드렸다. 봉사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야 학교에 온 무스타파를 본 나는 반가워서 아이를 꼭 안아주었고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나를 보며 해맑게 웃음을 보이는 무스타파를 보니 그동안의 걱정이 녹아 내렸다. 무스타파는 “아욘 아욘!” 서툰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키르기스스탄 전통 낙타인형을 내밀며 우리 다시 볼 수 있냐고 말했다.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어쩔 줄 몰랐다.

마지막 날 아이들과 인사하며 눈물을 닦고 있는 나에게 통역봉사자 사이칼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도 몇 년 전에 이 아이들처럼 그랬어요. 선생님들 덕분에 이렇게 한국어를 잘하게 된 거에요.” 이제 갓 스물이 된 사이칼은 중학생이었을 때 봉사로 온 한국인들을 만나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한국어 공부까지 시작했다고 했다. 사이칼을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과 책임감이 들었다. 내가 만난 아이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나로 인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이것이 내가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였음을 새삼 깨달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이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르기스스탄 교육봉사로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와 그 꿈의 씨앗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누군가도 나처럼 꿈의 씨앗을 품었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더 넓은 세상에서 교육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고 한다. 현직에 나간 이후에도 한국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여 교원 해외 장기 파견 프로그램에 지원할 생각이다. 또한 중앙아시아 내의 고려인 지원 사업과 국내의 다문화 가정의 다문화 교육에도 힘쓰고 싶다. 나는 한계를 정하지 않고 다양한 일에 도전할 것이며 기회가 왔을 때 꿈을 펼칠 것이다.

* 공적개발원조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ㆍ사회발전ㆍ복지증진 등을 주목적으로 하는 원조.
업데이트 2017-08-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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