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에 영속의 아름다움을 녹여내다
    박상규 제124호 기능한국인 공간미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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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쁨은 예쁨으로써 그 쓸모를 다한다’는 말이 있다.
아름다움은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 아름다움을 한 시대에만 남겨두지 않고 후대의 누군가도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미술의 박상규 대표는 묵묵히 보존해가고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금속의 특별함을 통해 머나먼 미래에도 존재할 영원의 아름다움을 상상한다.

 

공간에 아로새겨진 미적 가치

광화문 광장을 굽어보는 세종대왕 동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제작자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김영원 전 홍익대학교 조소과 교수가 조각한 세종대왕상을 영구 보존할 수 있도록 금속조형물로 재탄생시킨 공간미술의 박상규 대표 이야기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문화를 추구하기 시작해요. 역사를 평가할 때도 문화가 얼마나 융성했느냐에 따라 그 수준을 가늠하잖아요. 작가들은 시대를 반영해서 작품을 만들곤 하는데, 작품만 만들어서는 아무것도 안 돼요. 몇 천년이 흐른 뒤에도 남아있도록 보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장소 그 자체보다 조형물이 ‘랜드마크’가 되어 그곳의 대변인이 되는 일이 많다. 우리가 광화문 광장을 떠올릴 때 넓은 터보다도 그곳의 대표 상징물인 세종대왕상을 먼저 떠올리는 것과 같이. ‘공간미술(Space Art)’이란 업체 이름에는 텅 빈 공간에 특별함을 불어넣는 금속조형물의 존재 가치가 담겨있다.

“백제 금동대향로나 통일신라시대 반가사유상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자체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잖아요. 이 정도로 정교하게 금속을 다룰 수 있었다면 다른 분야도 굉장히 뛰어났을 거라는 예상도 가능해요. 조형물만 보고도 그 시대 예술의 발전 정도가 보이는 거죠.”

금속은 반영구적이고 입체적이다. 그렇기에 그 시대를 다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 그만의 철학이다. 주물(鑄物)은 그 자신에게도 의미가 깊다. 단순한 직능을 넘어 삶이자 신념이고 인간 박상규 그 자체가 담겨있는 그릇이다. 고온에 펄펄 끓었다가 더욱 단단하게 굳어가는 금속처럼 그의 인생이 조형물에 묻어난다.
 


미술 분야의 희망이 되는 롤모델

박상규 대표가 기능한국인이 된 것은 유독 뜻깊게 다가온다. 미술 분야에서는 최초이기 때문이다. 금속조형물 제작 분야는 주물 산업 가운데서도 낙후되어 있는 편에 속한다. 공장 등록을 낼때만 해도 고유 코드번호가 없어서 3개월 만에 겨우 허가를 받을 정도였다.

“이 분야는 실상 수공업이에요. 남들이 가고 싶어하지 않는 길이죠. 가령 자동차 같은 기계 소모품은 수요가 보이잖아요. 그런데 예술은 안 그렇죠. 수요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영속하는 거고. 돈을 생각하면 절대로 못해요. 힘들기도 하고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도 하지만 즐거워서 계속하고 있어요.”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못하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우직하게 걸어와 타인의 존경을 받고, 마침내 기능한국인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이름 석 자를 올린 박상규 대표. 그는 우리나라 미술 산업에 한 획을 긋는 예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본분에 충실하면서 즐겁게 하다보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어요. 한 길로 쭉 가지 않고 샛길로 빠졌다면 저 역시 최고가 되지 못했겠죠. 중간에 유혹이 많더라도 뿌리를 유지하며 계속 나아가야 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에 반드시 인정받게 돼요.”

그는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데 대한 소감으로 우리나라 예술의 발전에 힘쓰겠다며 자긍심을 표했다. 능력중심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인적자원의 중요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미래 속에 남기는 현재의 아름다움

공간미술에는 산학협력의 일환으로 실습을 나온 대학교 조소과 학생들이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뒤를 이어 계속 이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박 대표. 그런 것 치고는 후학들에게 별말을 하지 않는단다. 누가 뭐라 해도 본인이 진심으로 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학생들한테 작품을 닦으라고 이야기해요. 먼지가 많아 힘들어하죠. 그럼 이렇게 말해요. ‘그건 청소가 아니다. 그 작가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관찰하고, 이 사람은 이렇게 했는데 나는 다음에 어떻게 해야겠다 이런 걸 생각하는 작업이다. 그건 굉장히 즐거운 거니까 알아서 생각하고 해’라고.”

박 대표는 현재 경기도 안성에 금속 조형물 전시관을 건립 중이다. 무려 9년에 걸친 토목공사를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건물이 올라갈 차례. 외국에 두루 다녀보니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금속미술관, 박물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경험이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해 인류 문명의 발전을 주도한 금속에 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한 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게 했다. 방문객들이 직접 금속조형물을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장은 물론 학술 세미나실도 만들 계획이다.

“마지막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금속조형물 분야를 계속 이끌어갈 수 있도록 무언가 남겨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금속에 대한 정확한 예시를 보여줌으로써 만 명 중에 한 명만 저처럼 이 분야에 ‘미쳐있는’ 사람이 나오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도록 소중히 잠가둔 곳에는 박 대표의 소장품이 가득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조각가들의 작품이 금속을 입은 채 잠들어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닿는 그의 눈길은 눈앞을 바라보면서도 언젠가 그 작품들이 전시관에 자리할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업데이트 2017-08-1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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