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효석문화마을 - 하얀 메밀꽃 바다에 발을 담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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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9월 봉평면은 산허리가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아름답다. 풍경에 반해 빈 곳 없이 만개한 꽃밭 사이로 한 발 들어서면, 길게 목을 뺀 꽃잎이 허벅지를 간질이며 반갑다는 인사를 건넨다. 파란 하늘과 새하얗게 내린 메밀꽃이 투명하게 빛나는 곳, 평창군 봉평면 ‘이효석문화마을’ 에서 만날 수 있는 장면이다.

*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한 구절. 소설은 장돌뱅이로 살아가는 주인공 허 생원이 강원 봉평에서 대화 장터로 가는 여정을 담았다. 허 생원은 평생 젊은 날 하룻밤을 보냈던 성씨 처녀를 그리워하는데, 우연히 만난 젊은 장돌뱅이 동이가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달밤 메밀밭 묘사가 백미.


‘메밀꽃 필 무렵’을 한 장씩 넘기다

‘이효석문화마을’은 가산 이효석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 제1호 문화마을**이다. 동시에 선생의 작품이자 우리나라 대표 단편소설인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기도 하다. 소설은 그린 듯 아름다운 배경과 실감나는 묘사로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데, 메밀꽃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풍광 앞에 서면 소설 속 표현이 절로 이해가 된다.

이효석문화마을을 즐기기 위해서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품에 지니고 오길 추천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들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소설 줄거리만 잘 기억해도 이효석문화마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시작점은 마을 맞은편에 있는 봉평오일장이다. 주인공 허 생원이 봉평장에서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해 대화장에서의 한탕을 기대하던 곳. 지금은 그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소설의 첫 장면처럼 복작복작한 분위기나 사람 냄새나는 활기는 아직 남아 있다. 특히 앞으로는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과 연계해 소설 속 전통장터의 느낌을 듬뿍 더할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이효석문화마을에 들어서면 초입에 ‘물레방앗간’ 이 먼저 보인다. 허 생원이 평생 잊지 못한 성씨 처녀와 하룻밤 사랑을 나눴던 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시원하게 돌아가는 물레방아 옆에 초가를 올린 단촐한 공간이 나란히 서 있는데, 세차게 떨어지는 물소리가 어쩐지 아직도 거기 남았을 허 생원과 성씨 처녀의 은근한 대화를 가리려는 것 같다.

남녀의 은밀한 만남을 못 본 척 서둘러 나오면 메밀밭이 열린다. 봉평을 대표하는 경치이자, 허 생원이 친구 조선달, 동이와 함께 걸었던 길이다. 이곳에서 허 생원은 동이가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란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을 그들의 흔적을 뒤따르다 보면, 젊은 날 스쳐 지났던 여인에 대한 그리움이나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장돌뱅이들의 헛헛함이 느껴진다.

* *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하는 지역브랜드화 사업. 지역의 문화 자원을 활용해 지역 자체가 고유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효석 선생을 만나다

걸음마다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면 이번엔 이효석 선생이 마중을 나온다. 강원도 평창 출생인 선생은, 고향 산천의 푸름을 작품에 그대로 녹여내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선생의 문학 세계를 더 깊이 배우고 싶다면 이효석문학관으로 향하자. 책상에 앉은 선생의 동상이 먼저 반긴다. 곧은 자세로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노트에는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이 막 마무리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문학관 내부로 들어서면 인간 이효석과 그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자료들이 깔끔하게 정리 및 전시되어 있다.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도 되짚어보고, 우리나라 문학의 한 시절도 느껴보자. 특히 1930년대 선생의 평양 집을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재현한 집필실이 재미있다. 벽면의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Merry X-mas’ 문구에서 축음기까지, 잘 꾸며놓은 공간에서 선생의 세련된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문학관에서 선생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봤다면 이효석 생가에서는 선생의 삶과 마주할 수 있다. 실제 생가 터의 조금 아래쪽에 지역 어른들의 고증을 토대로 복원된 초가집이 자리한다. 건물 안에는 약간의 가구와 병풍 등으로 분위기를 냈다. 봉평장에서부터 생가까지 오느라 오래 걸었던 다리를 여기서 조금 쉬어도 좋겠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작은 나무 마루에 앉아 숲 속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자면, 이곳에 앉아 자연을 벗 삼아 소설을 구상했을 이효석 선생의 온기가 느껴진다.

선생의 이름을 딴 ‘이효석 문학의 숲’도 있다. ‘메밀꽃 필 무렵’ 속 장소나 배경을 조성해둔 곳으로, 푹신한 흙길을 따라 걸으면 마치 영상을 한 편 보는 기분이 든다. 봉평장부터 동이가 농을 걸던 충주집 주막, 강에 빠진 허 생원을 업고 건너는 동이의 상 등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푸르게 이어지는 강원도의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으니, 소설 읽기와 산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장소이다.




평창효석문화제를 즐기다

이효석문화마을이 더욱 환상적으로 변하는 때는 메밀이 활짝 피는 순간이다. 그 시기에 맞춰 열리는 ‘평창효석문화제’는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축제이다. 허 생원이 단 하룻밤 인연이었던 성씨 처녀를 잊지 못한 데서 착안해 ‘메밀꽃밭에서 일어난 생애 단 한 번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9월 초에 개최된다.

이 시기 이효석문화마을에는 하얀 바다가 펼쳐진다. 빼곡하게 들어 찬 메밀꽃이 만개한 풍경이다. 드넓게 이어지는 광활한 대지 위, 희게 반짝이는 메밀꽃이 뿌려진 장관 앞에 문득 걸음을 멈춘 채, 한 번의 만남을 일생동안 간직한 허 생원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건 어떨까?

축제인 만큼 다채로운 행사도 진행된다. 시골 장터를 배경으로 다양한 민속놀이가 펼쳐지는 전통마당이 첫 번째이다. 한쪽에선 메밀을 주재료로 한 메밀음식마당이 열려 봉평의 맛을 선보이고, 또 한쪽에서는 메밀타작이 바쁘게 진행된다.

선생의 이름을 딴 축제인 만큼 문학마당도 이어진다. 전국효석백일장, 메밀꽃 필 무렵 영화 상영, 작가와의 만남 등 ‘메밀꽃 필 무렵’을 느끼고 이효석 선생을 기리는 시간이다. 문화마을에서는 한 발 물러나 관람하는 입장이었다면, 축제에서는 직접 참여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마지막은 소설 속 메밀밭과 강원도의 자연을 활용한 자연마당이다. 말갛고 청청한 푸름 속에서 얻은 영감을 소중한 사람에게 엽서로 쓰거나, 음악 사연으로 남길 수 있다. 소원을 빌어 날리는 풍등 행사도 진행된다고 하니 속에 담아둔 마음을 꺼내보는 것도 괜찮다. 허 생원이 동이를 만났듯, 바라던 일이 하나쯤은 이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무더운 여름이 한풀 꺾인 틈으로 신선한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이효석문화마을을 찾자. 무한하게 이어지는 하얀 메밀꽃 바다를 배경으로 우리 문학의 순수함을 한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업데이트 2017-09-1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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