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묵히 마주한몰입의 시간 - 배종외 2017년도 대한민국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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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외 대표 약력
1988년 제29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CNC기계 직종 금메달 수상
1988년 동탑산업훈장
2005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국제대회 심사위원 위촉
2010년 기능한국인 선정
2013년 전국기능경기대회 기계분과장 위촉
2015년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선정
2017년 대한민국명장 선정



어떤 대상에 깊이 파고들어 빠져있는 상태를 몰입이라 한다. 이는 배종외 대표가 평생에 걸쳐 CNC기계를 대하던 마음자세이기도 하다. 한 눈 팔지 않고 오롯이 고민하고, 시험하고, 실험했던 시간들은 정직하게 축적되었다. 피치1) 0.2mm 단위까지 정밀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건 그 때문이다. 착실하게 쌓인 그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대한민국명장이라는 꿈

어떤 산업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를 대한민국명장이라 한다. 9월 직업능력의 달을 맞아 2017년도 대한민국명장 11명이 선정됐다. 배종외 씨앤씨뱅크 대표도 기계분야 컴퓨터응용가공 직종으로 그 이름을 올렸다. 현장에서 15년 이상 종사하며 산업의 발전을 이끌고, 다음 세대 기술인들이 계속 나타날 수 있도록 숙련기술 자체의 발전에 공헌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꿈 하나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8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을 때 이응선 당시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님이 대한민국명장 제도가 있다는 걸 소개해주셨어요.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 30년이 걸렸습니다. 이제 최고의 엔지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 대표의 전문분야는 CNC기계이다. 컴퓨터를 활용해 부품 제작용 공작기계(마더머신)를 개발하고 가공하는 직종으로, 가공 프로세스를 프로그래밍하고 실제 기계를 운영하는 전반을 관장한다. 주로 다각형 부품 제작 기계를 다루는 CNC밀링, 원형 부품 제작 기계를 취급하는 CNC선반으로 나뉘는데, 배 대표는 두 분야를 모두 다룰 줄 안다. 그런 그가 기계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건 1981년 고등학생 시절. 범용선반으로 첫 발을 떼었다.

“삼천포공업고에 입학해서 범용선반을 먼저 배웠어요. 쉽게 말해 CNC기계가 하는 모든 일을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부품을 얻으려면 기계부터 정밀해야 해요. 세밀한 조각 작품을 만들듯, 기계에 몰두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한 번 기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오래도록 몰입했다. 그 시간이 있어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배 대표. 그에게서 오랜 기간 한 분야에 침잠해 스스로를 단련시킨 사람의 여유가 묻어난다.

1) 나사산이 대응하는 두 점의 거리. 나사 원통의 중심인 축선에 평행하게 측정한다.



최초의 CNC기계 금메달리스트 

배종외 대표가 대한민국명장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가슴에 단 타이틀이 있다. 바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CNC기계 직종 최초 금메달리스트. 1987년 CNC 직종이 대회 종목으로 선정된 후 첫 경기가 이뤄진 1988년 호주 시드니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벅차다며 웃었다.

“사실 기능경기대회에 도전한 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1982년 경남 지방기능경기대회 범용선반 직종에 나갔지만 메달을 따지는 못했죠. 아쉬웠지만 그 경험 덕에 마음을 다잡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지방기능경기대회를 뒤로 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한 현장에서 처음 CNC기계를 만났다. 범용선반을 다뤘던 학창시절을 살려 CNC기계를 배워보면 어떻겠느냐는 회사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시 대중화되지 않은 분야였지만 그는 고민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 용기가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금메달 수상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80년대 초반은 이 분야의 시작 단계였기 때문에 기술을 전수 받을 곳도 마땅히 없었어요. 독학 수준으로 하나하나 습득했습니다. 회사에서 다양한 가공 프로세스를 시험하고, 침대, 책상, 화장실 등 눈에 보이는 곳마다 부품을 뒀어요. 하다못해 호주머니에까지 들고 다니며 더 나은 가공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회사, 집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CNC기계에 파묻혀 살다시피 했다. 어느 날, 기계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보니 CNC기계 분야에서 인정받는 이름이 됐다. 실력은 쌓았지만 돌아보면 힘든 길이었다. 스스로 터득해야 했던 시행착오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노하우를 전하기 위해 직접 기술 서적을 출판했다. ‘CNC 선반 프로그램과 가공’, ‘머시닝센타 프로그램과 가공’. 후배들이 딛고 설 발판이라고 생각하니, 업무와 집필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힘든 스케줄도 버틸 수 있었다.


차세대 기술인을 지원하는 국제지도위원

기술서적 출판이 배 대표가 후배들을 위해 마음을 쓴 것이라면,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직접 돌보는 일도 하고 있다. 1988년 금메달 수상 이후 1989년부터 CNC기계 직종 분야의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1992년부터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으로, 1999년에는 CNC밀링 직종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13년부터 올해 9월 열린 제52회 전국기능경기대회까지 기계분과장도 맡았다. 명칭은 조금씩 변경되었지만 차세대 기술인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이라는 의미는 같다.

“2005년부터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국제지도위원(국제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회 전까지는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대회에서는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지금까지 금메달 4명, 은메달 2명을 배출했는데, 제44회 아부다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제지도위원의 역할이 단순히 선수들을 지원하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이 공정하게 심판받아 실력만큼 결과를 얻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 실제 배 대표는 제43회 브라질 상파울루 대회 CNC밀링 직종 심사에 이의를 제기해 폐회식 당일까지 시상을 진행하지 못했던 일화를 전했다.

“당시 대회 중 문제가 발생하여 여러 개의 과제 중 일부만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면 한 과제당 배점이 대회 규정보다 높아지는데, 선택된 항목에 강한 선수들만 유리한 게임이 되잖아요. 이의제기를 했죠. 결국 폐회식 후 일주일 동안 전체 과제를 다시 채점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금메달이었습니다.”

배 대표는 마치 자신이 금메달을 목에 건 듯 기뻐했다. 단순히 성적 때문이 아니다.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노력만큼은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기술인들이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길 기능경기대회를 통해, 또 자신의 사업을 통해, 선배 기술인으로서 돕고 싶다는 배종외 대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지나온 시간을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눠줄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업데이트 2017-10-13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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