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쥐어 고추냉이를 바르고 부드러운 생선살을 올리는 손짓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밥의 양은 정확하게 14g(점심용) 혹은 12g(저녁용). 유려한 손놀림이 지나가면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그림 같은 초밥 한 접시가 완성된다.
일필휘지로 순식간에 그린 것 같지만 그 뒤에 30여 년의 세월이 있다.
2017년도 우수숙련기술인 중 유일하게 요리 직종에 이름을 올린 안유성 가매일식 대표의 이야기이다.
우수숙련기술인,
꿈을 이루어 줄 날개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에 위치한 가매일식은 평일 점심시간에도 만석이다. 맛있다는 소문 덕에 멀리서도 찾아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명성처럼 가게 입구에는 각종 요리대회 수상 상장,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방문 후기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최근 한 가지가 더 추가됐다. 안유성 대표가 2017년도 올해의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정된 것이다. 올해 요리 직종으로는 유일할 뿐 아니라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최초이다.
“요리를 시작한 지 28년째 큰 상을 받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요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능장만 되어도 ‘요리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거든요. 그런데 ‘준명장’으로 불리는 우수숙련기술인이라니, 정말 영광입니다. 꿈을 이뤄나가는 길에 날개가 되어줄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수숙련기술인 제도는 각 분야에서 7년 이상 업무에 종사한 숙련기술인을 선정하고 지원하여 기술 개발을 독려하는 사업이다. 안 대표는 우수한 기술과 함께 그간 기능장·기능사·산업기사 등 출제위원으로 활동하며 기술인들의 기술향상에 이바지한 경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지금과 같은 요리 직종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정되기까지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고향인 전남 나주에서 갈빗집을 하던 어머니 덕에 요리와 가까이 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식당을 오가면서, 만든 음식을 고객이 맛있게 먹어줄 때의 즐거움을 미리 배웠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요리사를 꿈꾸다가, 일식 분야 전망이 좋다는 어머니 말씀에 일식을 택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직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한 일식 가게에서 ‘냄비닦이’로 시작했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 하루에 매운탕 그릇 4~500개씩을 닦아야 했다. 설거지에 익숙해질 때쯤 ‘야채다이’라고 말하는 야채 손질을 시작했고, 그렇게 5년 여가 지난 뒤에야 초밥을 쥐어볼 수 있었다. 장사가 끝난 후 남은 밥에 무를 납작하게 잘라 생선 대신 얹는게 고작이었지만 밥을 쥘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안 대표는 원 없이 연습했다.
남도초밥, 초밥에 더한 지역의 맛
긴 시간을 들여 드디어 초밥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됐지만 안 대표의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1996년 초밥의 본고장인 일본으로 향했다. 주방 일을 병행하며 다닌 니가타 요리학교에서 단기과정으로 일본의 스시와 문화를 함께 배웠다. 실력 향상 외에도 이 시기가 그에게 특히 더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일본 초밥에는 다양한 재료들이 올라갑니다. 새조개, 피조개 등 조개류를 고급 재료로 치는 게 인상 깊었어요. 제 고향 남도의 서남해안 갯벌에서 많이 잡히는 재료들인데도 당시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거든요. 고향 재료를 이용해 남도식 초밥을 만들어보자는 영감을 처음 받게 되었어요.”
초밥에 남도의 맛을 더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마음속에 품은 채, 그는 2002년 광주에 지금의 ‘가매일식’을 차렸다. 방 4개, 총 8개 좌석이 있는 작은 가게였다. 지금은 큰 도로도 나고 주변 상권도 많이 발달했지만 당시엔 허허벌판에 불과했다. 그런 위치 탓에 초반에는 주위에서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는 성실과 정직을 무기로 꾸준히 정진했다. 그 덕에 쌓인 ‘이 집에선 믿고 먹을 수 있다’는 고객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금은 약 200평까지 가게 규모를 키웠다. 그 비결은 다름아닌 ‘맛’. 재료를 손질하고, 밥을 짓고, 식초를 배합하는 등 하나의 초밥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각 기술들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해왔다.
“저희 집 초밥은 밥이 까맣습니다. 김치의 신맛에 흑초를 배합한 발효식초를 더해서 만드는데요, 간이 잘 배어 있어 감칠맛이 돕니다. 새로운 초밥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본을 오가며 트렌드를 읽고 신제품에 대한 힌트를 얻어요. 조린 백합초밥을 보고 벌교 참꼬막 초밥을 떠올리는 식입니다.”
이 외에도 안 대표는 남도의 맛이 물씬 느껴지는 나주 생고기, 묵은 김치, 갑오징어 등을 이용한 초밥 등을 만들었다. 남도를 대표할 게미진1) 맛을 내기 위해 새로운 재료를 조합하며 노력한 정성이 그만의 기술로 차곡차곡 쌓였다.
꿈, 함께하는 미래
초밥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덕에 우수숙련기술인이라는 꿈을 이룬 안 대표는 요즘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광주 동구 아시아문화전당 앞길을 따라 ‘아시아 음식의 거리’를 조성하는 사업과 지역을 대표할 요릿집을 찾는 ‘게미맛집’을 선정하는 일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요리를 통해 광주를 비롯한 남도지역을 활성화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요리에 저희 지역 특색을 담아 소개한다면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전문분야인 초밥뿐만 아니라 지역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맛이 더해지면 말이지요.”
그래서 그는 생활의 달인, 스타킹 등 각종 방송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현재는 광주지역방송인 KBC의 ‘TV블로그-꼼지락’ 프로그램에 매주 수요일마다 출연해 지역 맛집 소개나 다양한 요리와 그 맛에 대한 코멘트를 하고 있다. 남도의 맛을 알리기 위한 과정이다.
동시에 그는 요리를 꿈꾸는 청년들이 오너 셰프로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다. 그때문에 가매일식에는 현재 두 명의 일학습병행제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현장에서 요리를 배우며 학업을 병행했던 자신과 같이, 기술과 이론은 물론 요리사이자 한 가게 주인으로서 책임 의식까지 습득해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안 대표가 택한 방법이다.
“최종적으로는 평생교육원 형태의 교육기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바탕으로 기술과 이론은 물론이고 사업을 해나가는 경영 능력까지 배울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그 친구들이 자라나 또 다른 후임 양성에 힘쓰고, 그러다 보면 점차 발전해 나가겠지요.”
초밥 위에 묵묵히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온 안유성 대표. 이제는 지역과 지역의 맛, 함께하는 이들까지, 모두를 그려내기 위한 더 큰 접시를 꺼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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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라도말로 감칠맛이 나고 맛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