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려라, 세상 끝까지
    글_ 황수영 - 직업방송매체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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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부터 마른 체형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몸무게가 갑자기 늘었던 적도, 크게 줄었던 적도 없어서 줄곧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내 몸무게는 그대로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서른을 넘어서자 이상하리만치 아랫배에만 세월의 무게가 쌓여갔다.

무게가 쌓이는 만큼 체력도 함께 줄어들었다. 더 이상은 이렇게 두면 안 되겠다 싶어 운동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평소 안하던 운동을 하자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별다른 장비 없이 두 다리와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달리기, 정확히는 마라톤을 해보자 결심했다.
 


처음에는 2km만 달려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폐가 찢어질 듯 했다. 반환점을 너무 멀리 잡은 것 같다 혹은 오늘은 절반만 달릴까 하는 후회와 고민이 달리는 내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인데 어렵사리 시작한 운동을 중간에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래서시간이 날 때마다, 때로는 아침에 때로는 저녁에 청계천변을 달렸다. 집 밖을 나서기가 힘들지 막상 밖에 나가니 그보다 좋을 수 없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과 매일 봐도 지겹지 않은 자연의 풍광은 하루 내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달리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한 번에 달릴 수 있는 거리도 길어졌다. 첫 시작은 4km였다. 처음엔 버거웠던 그 거리가 얼마 뒤엔 숨이 차지 않은채 달릴 수 있는 정도가 됐다. 목표로 삼은 거리가 수월해지면 조금씩 그를 늘려갔다. 그렇게 거듭하다보니 나중에는 10km를 아무렇지 않게 달리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얻은 것은 어떤 것이든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체력이다. 우선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10km와 하프마라톤(21km)도 계속해서 달리다 보니 되는 것을 보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체력에 있어서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사실 사진으로 보면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과 지금의 모습에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달라진 면이 있다면 이전보다 덜 피곤하고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출장과 야근 등의 업무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일주일에 1~2회씩 잊지 않고 달리기를 하고 있다. 다행히 사는 곳 가까이에 태화강 둔치가 있어서 퇴근 후 옷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달리러 나간다.

2012년부터 시작해 내가 달려온 거리는 벌써 3,560km에 달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달린 것이 어느덧 천 리를 넘은 것이다. 그동안 힘들고 숨찬 걸음도 있었고, 가벼운 걸음도 있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도 그랬다. 힘들어서 멈추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가다보니 언젠가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이를 보면 마라톤은 삶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계속해서 달려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업데이트 2017-11-2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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