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을 새기는 장인의 혼
    류철규 - 대한민국 인장공예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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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 인장.
흔히 도장으로 불리는 인장은 예부터 국새나 낙관으로 사용되며 귀중한 문서의 곁을 지켜왔다.
약속과 책임을 상징하며 개인의 고유한 표식으로 함께 해온 것.
인장공예 명장 류철규 씨는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의미 있는 인장을 오랜 세월 동안 새겨오고 있었다.
 

 

‘새김’에 통달한 장인
한 분야에 대한 실력은 물론 경력, 사회공헌도까지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충족해야만 오를 수 있는 대한민국명장의 길. 그런 명장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인장공예 명장인 류철규 씨는 가세가 기울던 17세,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필체가 정갈했던 그에게 인장공예는 천직이었다.

진정한 장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그는 한학 공부를 시작, 1년 만에 독학으로 8,500자를 뗐다. 서예의 5체(전·예·해·행·초)를 익혔을 뿐 아니라 도장의 특성상 글자를 뒤집어쓰는 ‘좌서’까지도 터득했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었던 덕에 인장을 비롯해 전각(篆刻), 서각(書刻) 등 다종다양한 새김에 능할 수 있었다.

“조각사의 혼이 들어가지 않은 인은 인이 아니에요. 하나를 만들더라도 성심을 다해 새겨야 해요. 언제나 인장의 주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치 있는 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의 인장은 단순한 인감이 아닌 행운의 부적이다. 의뢰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시로 사주를 따진 뒤 성격과 체질에 맞는 각인을 한다. 개성과 어우러지는 서체를 고르고, 그에 따라 나무, 돌, 소뿔, 상아 등 인장의 재료 또한 달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장은 소유자의 중요한 일에 쓰이며 그 진가를 발휘한다.
 

 

지역 명장으로서의 공헌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공헌 이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인장공예 기술도 기술이지만 사회기여도 부문에서 류철규 씨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83년도부터 12년 동안 대전시 새마을지도자를 역임하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그는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이 생활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다.

10년 전 대전광역시 장인회를 직접 결성한 것도 이러한 봉사의 일환이다. 공단 대전지역본부와 함께 개최한 대한민국명장 장인전이 올해 벌써 8회째를 맞았다. 장인들의 작품을 알리고 기술인 육성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이 전시회를 손수 기획했다. 실제로 장인전이 열리는 8년간 다수의 우수숙련기술인, 기능전승자가 배출됐고 대전광역시에서 새로운 명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장인전을 개최할 때마다 회원들과 십시일반으로 모은 불우이웃돕기 백미 900㎏도 꼬박꼬박 대전광역시푸드뱅크 외 지역 봉사단체에 전달하고 있다. 벌어들이는 수입의 반은 반드시 사회로 환원한다는 사명감을 평생 고수해왔다. 가훈을 써주는 재능기부활동을 비롯해 연탄 나르기나 김장하기 등 그의 연말 스케줄은 봉사활동으로 가득하다.

새해가 가까워오는 즈음에는 500여 장에 달하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글귀를 써 이웃에게 나눠주며 한해 가득한 복을 기원한다. 의뢰받은 인장 작업과 후학 양성으로 바쁜 와중에도 명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이다.
 


묵묵히 잇는 전통의 맥
류철규 씨는 성호사를 찾는 손님을 위한 인장 작업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작품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모든 새김에 통달한 만큼 국새 재현, 와당 무늬 각인 등 작품 활동의 폭이 넓다. 특히 회양목 뿌리를 발치해 만든 반야심경 인장은 그의 걸작으로 꼽힌다. 곧게 다듬지 않고 뿌리 모양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재목을 가공하는 데만 3년, 새기는 데 2년이 걸렸다. 돌에 새긴 반야심경은 많지만 나무를 가지고 인장공예로 시도한 것도 그가  유일하다.

전통공예의 가치와 미학을 널리 알리기 위한 활동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3년째 대전시민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성호사 근처 공방에서 서각과 전각을 가르치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세상에서 한 자 한 자 새겨나가는 인고의 시간, 느림의 미학을 아는 제자들이 그의 밑에서 사사 받고 있다.

“그동안 300명에 달하는 인장공예 기능사를 배출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인장공예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향후 그는 인장박물관 건립을 꿈꾸고 있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인장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은 물론 인장공예 체험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대전박물관에 작품을 기증하여 더 많은 이들에게 인장공예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손톱처럼 작은 공간에 새겨지는 우주. 명장은 그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도 인장에 꿈을 담아낸다.

 

업데이트 2017-12-0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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