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 혁명군이 왕궁을 포위했을 때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를 마지막까지 지킨 것은 프랑스 군대가 아니었다. 모든 프랑스 수비대는 도망갔지만 스위스 용병 700여 명은 남의 나라 왕과 왕비를 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프랑스 시민혁명군이 퇴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도 스위스 용병들은 그 제의를 거절했다. 당시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에게 보내려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가 신뢰를 잃으면 우리 후손들은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왕궁을 지키기로 했다.ʼ
오늘날까지 스위스 용병이 로마 교황의 경비를 담당하는 것은 이러한 용병들의 신뢰성 덕분이다. 젊은 용병들이 목숨을 바치며 송금한 돈도 결코 헛되지 않았다. 스위스 은행은 용병들이 송금했던 피값을 목숨을 걸고 지켜냈다. 그 결과 스위스 은행은 안전과 신뢰의 대명사가 되어 이자는 커녕 돈 보관료를 받아 가면서 세계 부호들의 자금을 관리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스위스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주변국에 시달리며 비극적인 역사를 이어왔다. 국토의 넓이는 우리나라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한 크기로 국토의 75%가 산이며, 자원이라곤 사람 밖에 없다. 150년 전까지만 하여도 최빈국이었던 스위스가 지금은 1인당 GDP가 세계 2위(2016년)인 ,000의 선진국이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신앙에 기초를 둔 ‘신뢰’ 덕분이었다.
신뢰(信賴)란 무엇인가? 신뢰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타인의 미래 행동이 자신에게 호의적일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말한다. 우리가 가족을 믿고 친구를 믿고 이웃을 믿는 것은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퍼트남은 신뢰란, 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로 사회적 자본이라고 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가 낮은 나라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신뢰지수는 아주 낮다. OECD 사회신뢰도(2016년)에 의하면, ‘믿을 사람이 없다’(35개국 중 23위), ‘사법시스템도 못 믿겠다’(34개국 중33위), ‘정부도 못 믿겠다’(35개국 중 29위)였다.
‘미래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국의 청년 응답자들은 무려 79.7%가 ‘그렇다’고 답했다. 신뢰가 낮은 국가는 이해당사자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일례로 한국에서 노사정 대타협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고위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하여 스스로 부패를 없애는 일이야말로 신뢰를 쌓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라고 말한다. 언론은 사실에 입각하여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하여야 독자들이 신뢰할 것이다. 가짜 뉴스는 걸러야 하며 오보는 반드시 정정 보도를 내보내야 한다. 또한 법과 원칙이 사회를 지배해야 하며, 법은 누구에게나 정의롭고 공정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이 법망을 빠져나가고 거리마다 자기의 주장을 외쳐대는 행위는 신뢰를 크게 무너뜨린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처럼 학생들에게 어릴 때부터 청렴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금년과 작년에 청렴 교육을 실시했다. 수행사업의 영역이 넓어 각기 맡은 바가 다르지만 직원 간에 신뢰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이러한 튼튼한 신뢰성이 공단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나라는 자본, 노동과 같은 경제적 자본만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을 확충해 경제 성장을 도모해야 나라 경제가 부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