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후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수차례 아쉽게 떨어졌다. 고시 준비를 하다 결혼을 했고 세 아들도 태어났다. 공부를 핑계 삼아 가장의 의무를 게을리했기에 가족의 고통이 컸다. 미안한 마음에 2003년부터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했다.
생계를 위해 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결국 2007년 다시 손해사정사 자격을 취득해 인천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손해사정사는 보험금을 산출하는 자격으로 업무 범위에 제한이 많다.
보상합의서나 보험금청구대행도 불법이라 많은 손해사정사들이 불법의 유혹에 넘어간다. 하지만 나는 업무 범위를 철저히 지켰고 그러다 보니 영업에 비해 수입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던 중 행정사가 합의서 작성과 지급청구서 제출, 분쟁조정신청 등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행정사 자격을 취득해 손해사정사업과 결합하면 업무 범위가 확장돼 수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행정사 시험을 준비했다.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야근과 잔무를 핑계 삼아 집 근처의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내 목표는 최단 기간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시간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독학했고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2차는 혼자 공부하기에 한계가 있어 학원에 등록했고, 다른 수험생들의 열정과 노력을 지켜보며 자극을 받았다.
수험 준비는 다른 수험생과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저녁과 주말마다 생기는 많은 유혹을 뿌리치는 건 오롯이 수험생의 몫인 탓이다. 2차 합격을 못 하면 1차 고득점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1차에 낙방하면 2차의 기회도 없다. 그래서 1차는 학습량 조절이 필요했다.
오랜 실패의 경험을 통해 객관식 시험은 적당한 수준의 이론 이해와 기출문제의 반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권 교재를 통해 기본 이론을 이해한 후 행정학 행정법은 9급 공무원 기출문제로, 민법은 감정평가사 기출문제로 반복 학습했다. 다행히 예측이 맞아 민법은 만점을 맞는 등 고득점을 받았다.
3월부터 1차보다는 2차에 비중을 두고 준비했다. 기본서인 교재를 바탕으로 시험 범위를 3회독했다. 1차 시험 후에는 다른 교재로 독학했다. 1회독은 검은색, 2회독은 파란색, 3회독은 빨간색으로 밑줄을 그었다. 4회독 이후부터는 형광색으로 표시하며 주요 사항을 반복했다. 예전에는 책을 아껴 봤지만 그럴 필요 없다. 책은 소모품이고 불합격하면 폐지보다 못한 애물단지다. 그러니 책을 아끼지 말고 공부하다 필요하면 찢고 접으며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공부는 습관이고 사람마다 맞는 습관이 있기에 내 방법이 모두에게 통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수험기간 중 대부분이 슬럼프를 겪는다. 몇 시간 동안 책을 봐도 한 페이지를 못 넘길 때의 자괴감은 크다. 그럴때면 출제자와 채점자들이 공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채점자가 내 학습량을 간파해 공정하게 평가하리라는 믿음이 생기니 슬럼프에 빠져도 나태해질 수 없었고 불안감도 줄었다. 합격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항상 된다는 마음, 긍정적인 마음으로 머리는 느긋하게 몸은 절박하게 준비한다. 공부한 만큼 평가받으리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공부하면 어느새 슬럼프가 지나간다.
10월 2차 시험 후 12월 발표일, 70점이 넘는 고득점으로 합격했다. 현재는 손해사정사와 행정사를 겸업하며 보험금 산출은 손해사정사 자격으로, 합의서작성, 보험금청구, 분쟁조정은 행정사 자격으로 수행하고 있어 고객에게 전보다 큰 만족을 전하고 있다. 소득도 늘었다. 행정사 자격 취득으로 아내가 아들 셋을 키우며 대출 없이 양육에 전념할 수 있었다.
자격증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공정한 게임이다. 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을 통해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행정사, 가맹거래사, 손해평가사 자격을 취득해 삶이 한층 풍요롭고 자유로워졌다. 자격증 취득을 희망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