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늘만 있는 건 아닌 고장, 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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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김장철에 잠깐 유명해진다.
지금이야 그 수가 줄었을지 몰라도, 집집이 김장을 하던 시절에는 동네와 아파트 단지마다 “의성마늘 왔어요, 의성마늘!” 하는 소리가
트럭에 매달린 스피커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때가 있었다.
김장철처럼 마늘을 한꺼번에 소비하는 시기가 없어졌다 한들, 의성마늘의 품질이 떨어졌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의성은 이제 컬링으로도 유명한 고장이 됐다.
렇다고 해서 마늘과 컬링, 그 두 가지만이 의성을 의성답게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사진_정환정
 

 

어딜 가도 푸릇푸릇한 풍경
의성에 가면, 어디서든 밭을 쉽게 볼 수 있다. 밭이야 농촌 지역이라면 흔하게 볼 수 있으니 무어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그 밭에서 오직 한 가지 작물만 기르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다. 바로 마늘이다.

마늘은 크게 한지형 마늘과 난지형 마늘로 나눌 수 있다. 난지형 마늘은 스페인 품종이라 ‘스페인 마늘’이라고도 불리는데, 따뜻한 곳에서 자라다 보니 5월 중순 무렵부터 조기 수확이 가능하지만 저장성이 약해서 해를 넘기기 전에 모두 소비하게 된다.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나는 마늘이 대표적인 난지형 마늘.

한지형 마늘은 난지형보다 늦은 6월부터 7월 사이에 수확하게 되는데, 난지형보다 뿌리가 발달해 있고 조직이 치밀해 보관성이 좋다. 김장용으로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데, 보통 육쪽마늘이라 부르는 것들이 바로 한지형 마늘이다. 그리고 의성은 단양과 함께 이 육쪽마늘의 대표적인 생산지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낙동강의 상류를 따라 이어지는 밭들은 대부분 마늘이 차지하고 있다. 마치 웃자란 잔디밭을 보는 것처럼 푸르기 이를 데 없다. 저걸 누가 다 먹냐는 생각도 들겠지만, 걱정은 금물. 1인당 마늘 소비량이 연간 6.37kg(세계 1위, 2위 중국은 4kg)에 달하는 한국인의 마늘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정도 면적은 돼야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마늘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에는 군침이 돈다. 겉절이와 삼겹살, 마늘장아찌 등 마늘과 관련된 음식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상상 속의 행복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토록 마늘로 유명한 곳임에도 아직 마늘과 관련된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 현재 마늘테마파크로 사용할 건물은 준비되어 있으니, 그곳에 다양한 콘텐츠가 들어설 날을 기다려 본다.


오래된 역사 속으로 한 걸음
의성은 역사가 깊은 곳이다. 이미 삼한 시대에 조문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자리하던 곳이 바로 의성. 이후 신라에 흡수되었고 경덕왕 때에는 문소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가야 문화권이었던 인근의 고령, 성주와는 또 다른 독특한 문화를 유지했던 곳.

그래서 아주 옛날의 흔적들도 볼 수 있는데, 고분군에 이르면 그런 감상이 더더욱 깊어진다. 의성의 고분을 둘러볼 때 특히 더 흥미로운 점은, 발굴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안으로 들어서면 땅속에 묻혀 있던 옛사람의 모습과 그들이 사용했던 당시 토기의 생생한 외양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 토기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라나 대가야의 그것들과는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 ‘의성 양식 토기’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한다.
 


물론 이런 설명이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달걀 프라이의 노른자가 솟아오른 것처럼 봉긋한 옛 무덤들 사이를 여유롭게 걷거나 달리는 일은 모두를 즐겁게 할 게 틀림없다. 그렇게 탁 트이고 아늑한 곳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좀 더 본격적인 학습과 놀이를 원한다면 고분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조문국 박물관을 찾는 것도 좋다. 좀 더 다양한 당시의 유물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역시 근사하게 마련되어 있다. 의성 및 인근 지역 엄마 아빠의 유명 나들이 장소이기도 하다.
 


은밀한 정원으로의 초대
오래된 고장에 오래된 마을이 없을까. 의성을 대표하는 곳 중 또 다른 한 곳은 산운마을. 오래된 집들이 지금까지도 사람의 온기를 품고 있는 곳. 그런 집 중에서도 소우당(素宇堂)은 각별하다. 바로 정원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정원에는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궁궐의 정원과는 달리 보통 반가의 정원은 원래 있던 자연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꾸며지곤 했다. 작은 물줄기 옆에 정자를 지어 풍취를 감상하거나 한 칸짜리 초당을 지어 운치를 더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소우당은 풍족한 재화를 바탕으로 창조한 새로운 형태의 정원을 갖고 있다.
 


따로 담을 두르고 본격적인 별채를 짓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편백을 심었다. 연못 역시 원래 있던 물줄기를 잇지 않고 따로 물을 가져다 채워 넣은 것으로 보이는 게 특이점이다. 이곳을 지었던 소우 이가발(李家發)의 집과 정원에 대한 철학, 그리고 미(美)에 대한 안목은 당시의 사대부들이 가졌던 그것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한옥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숙박도 가능하지만 사전에 연락(http://소우당.com)을 해둔다면 견학만 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마침 3월 31일부터는 사곡면 화전리 일대에서 의성산수유마을 꽃맞이행사(http://ussansuyu.kr)가 진행된다 하니, 일정을 조절해볼 만하다. 어느 곳보다 샛노란 꽃길이 눈앞에 펼쳐질 테니 말이다.

큰 나무는 큰 그림자를 만들기 마련. 그리고 그 그림자로 인해 많은 것들이 감춰지는 경우가 있다. 의성 역시 그런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맵싸한 향이 맴돌 것 같은 의성에서 말이다. 

업데이트 2018-04-2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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