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 이상, 기계가공 분야 최고에 오르고 싶었다.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갈고닦은 내공은 2014년 대한민국명장 타이틀을 거머쥐며 정점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4년 후, 시간이 흘러도 노력이 기반이 된 삶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올해로 35년차 행동하는 열정, 홍기환 명장을 만났다.
글_김민정 사진_차유진
Accurate
2017 NCS 학습모듈 밀링가공 동영상 강의
2016 산업포장 수상
2014 대한민국명장(컴퓨터응용가공 직종)
최신기계공작법 출간
올해의 기계인상 수상
2009 대통령 표창 수상
1984~현재 두산인프라코어(주) 개발부품 가공 및 정밀측정 담당
일과 삶의 균형,
기계가공의 길을 걷다
어릴 적, 막연하게 꾼 ‘기술자’의 꿈은 현실이 됐다. 인천기계공고 재학시절, 그는 모나지 않은 착실한 학생이었고, 입사 후에는 무던한 기술자가 되었다.
이렇듯 평범함 속에서도 한 가지 타고난 것이 있다면 마음먹은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해내는 근성이었다. 1984년 두산인프라코어 전신인 대우중공업 입사 이래, 줄곧 ‘국내 최초’ 수식어를 얻으며 동료들과 수많은 가공 작업을 완성한 홍기환 명장은 현재 두산인프라코어(주) 기술본부 시작엔진팀 기술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방산 엔진 Block 가공을 위해서 시제품 가공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동료 및 부하 직원들과 몇 년간 밤을 새가며 해낸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다행히 성공적으로 완수했어요. 이 과정에서 얻은 결실들이 명장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최초의 설계를 변경하지 않고 가공에 이르기까지, 책임이 막중했던 만큼 완수했을 때의 뿌듯함도 컸다. 이밖에도 기계가공 관련 특허 출원만 18건. 사내에서 남다른 기술력으로 인정받아온 그는 기계가공기능장 취득 외에도 2008년 이후 5번이나 명장 심사에 도전했다. 이유인즉슨 자신의 능력을 검증하는 데 ‘자격’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14년 9월 1일 대한민국명장(컴퓨터응용가공 직종) 타이틀을 얻고서, 굉장히 뿌듯했죠. 일하면서 남긴 ‘기록물’이 큰 힘이 됐어요. 그중 로봇용 펜홀더 특허에 관한 자료는 무려 30년이 넘었는데, 잘 보관해뒀더니 심사과정에서 저의 기술력을 증명할 객관적인 자료가 됐죠.”
스물한 살, 단독 특허를 낸 사실은 다름 아닌 ‘자료’로 증명됐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각종 특강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가치를 발휘할지 모른다는 게 그의 지론. 또 한 가지, 강조하는 것이라면 일과 삶의 균형. 고된 가운데서도 긍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음악’을 꼽는다. 그는 입사 후부터 줄곧 음악과 함께 걸어왔다.
“저는 미추요들클럽에서 아내와 함께 스위스 음악을 연주해요. 요들송 아시죠?(웃음) 직장생활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왜 없었겠어요? 그렇지만 스트레
스를 받아도 아랫사람에게 풀거나 자식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풀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음악이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지탱해온 거죠.”
선취업, 후진학
인생의 패러다임을 논하다
명장의 삶에서 ‘음악’은 단순히 여가 요소만은 아니다. 긍정과 열정을 이끄는 힘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것은 ‘학업’도 마찬가지다. 그는 공고를 졸업한 후 취업을 우선시하게 됐지만, 배움에 관한 끈을 놓지 않았다. 틈틈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노하우를 담은 책을 발간했다. 또, 인하공업전문대학 기계설계과에 진학한 데 이어 2013년에는 인천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끊임없이 이론과 기술을 업데이트했다.
“1999년에 회사가 한 번 휘청했어요.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었죠. 기술을 가졌다고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해요.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에요.(웃음)”
선취업 후진학을 증명한 인물. 그리고 사내 첫 대한민국명장. 그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그는 현재 사내에서 기계가공, 정밀측정, 설비보전 분야를 관리하는 것은 물론 우수숙련기술인 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 모교인 인천기계공고에서 CNC선반 및 밀링직종 기능반 지도자로 2012년부터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기술봉사자로서 모교를 찾아갔죠. 아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칠 때는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마인드 교육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현장에서 기술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요. ‘마인드’에 따라 끝까지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는 거죠.”
한편, 두산인프라코어(주)의 경우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이 처음 개발됐을 때, 적극적으로 도입에 힘쓴 기업 중 한 곳이다. 명장은 SME(Subject Matter Expert)로 사내 기술인력 양성에 참여한 인물로, 지금도 NCS 학습모듈 동영상 강의 등을 통해 실력중심사회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두 아들 녀석에게도 같은 말을 해요. 학업은 선택입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 거냐는 거죠. 20대에 남들보다 더 나은 타이틀을 얻었다고 해서 멈춰있으면 더 이상의 성장은 없어요. 50대가 되어서 보니 자신만의 경쟁력을 위해 끝까지 달린 사람이 결국엔 웃게 되더군요.”
인생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궤적을 달리한다. 어느 성공과 실패도 멈춰있지 않다. 그러므로 어디로 갈 것인지는 ‘오늘’ 나의 걸음에 달렸다는 홍 명장.
끊임없는 노력이 쌓아 올린 그의 성공이 그 무엇보다 탄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