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허전한 빈 논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겐 새로운 창조의 출발점이 된다.
날알을 털어낸 볏짚을 일상의 도구와 독특한 조형물로 재탄생시키는 짚풀공예가에게 가을 논은 무한히 열리는 창조의 무대이다.
이제는 먼 기억 속에만 있을 법한 전통 짚풀공예.
그 푸근하고 정겨운 감수성을 현대인의 일상에 전하는 이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글_김수연 사진_이성원
시간을 엮어 삶을 짓는 공방에 살다
어느새 초겨울 바람이 맵차게 불어온다. 구불구불한 마을 길목마다 걸린 ‘짚풀공예’ 간판이 방문객의 발길을 안내해준다. 평범한 시골 마을, 맨 끄트머리에 자리한 공방에서는 사각사각 짚풀 엮는 소리,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나누는 도란도란한 이야기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추운데 찾아오시느라 힘들지 않았어요?”
뜨거운 차를 내오며 맞이하는 김이랑 회장의 모습은 거친 짚풀을 다루는 푸근한 어머니의 느낌이지만, 그는 지난 9월 ‘2018 직업능력의 달 ’숙련기술전수자로 선정된 장인이다.
“벌써 한 이십 년 되네요. 아이들 키우며 살던 평범한 주부였는데 짚풀을 처음 본 순간 어릴 적 고향 생각이 났어요. 손으로 짚풀을 엮어 물건을 만들어내는게 재밌어서 시작한 게 세월이 이만치 흘렀네요.”
아침에 눈 뜨면 공방에 나가 짚풀을 엮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는 김 회장. 첫 번째 작품을 만들던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손끝에 닿는 거칠고도 따스한 온기, 비틀고 돌려 묶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그 소리는 마음을 평온케 하고, 구수한 듯 달콤한 마른풀 향기는 알 수 없는 의욕과 열정을 피워올렸다. 도시에서 알음알음으로 배우는 것으로는 성에 안 차, 스승을 찾아 멀리 있는 길 마다 않고 달려가기도 했다.
현재 곡성 기차마을에 있는 무형문화재 임채지 선생을 그렇게 만나 평생 스승으로 모시며 짚풀공예 기술을 전수받았다. 기술을 배우는 새, 젊은 여인은 어느 덧 전통기술의 맥을 잇는 전수자가 되었다. 좋아서 한 일이지만, 짚풀공예 전수자로 감당해야 했던 그간의 고생은 짧은 몇 마디의 말로는 다 풀기 어려울 터. 김 회장은 “그렇죠. 쉽지 않았어요.” 라며 온화한 미소로 지난 이야기들을 더 보탠다. 이를 두고 ‘운명’이라 하는가 보다. 온 몸으로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짚으로 씨줄 삼고 시간으로 날줄 삼은 그의 길은 멈추지 않고 이어져 왔으니 말이다.
사람살이에 필요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짚풀의 매력
사라져 가는 전통기능을 계승하고 보급하는 일에 매진중인 숙련기술전수자로서 누구보다 열정적인 활동을 해나가는 그의 이야기는 공방 안에 진열된 작품 소개와 함께 이어졌다. 거기엔 토실토실 웃는 돼지가 있고, 빗자루가 있고, 맷방석과 바구니, 지게, 삼태기에 크기별로 다양한 둥구미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의식주 모든 것에 걸쳐 쓰임이 되는 게 짚이에요. 이걸로 밥도 짓고 집도 짓고, 옷도 짓잖아요. 곡식 담을 그릇도 되고 멍석도 되고, 필요한 모든 걸 다 만들어내는 게 짚풀공예의 매력인 거죠.”
이 땅에서 벼농사가 계속되는 한 재료는 언제든 쉽게 구할 수가 있고, 모여 앉을 수 있는 방 하나면 어디서나 새끼를 꼬아 일상도구를 엮는 생활 공작소가 된다는 점도 짚풀공예의 장점이다. 지금도 공방에서 진행하는 각종 강좌나 체험활동 등에서는 짚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소통하고 창조하는 정겨운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곤 한단다. 자연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마음과 손길을 나누는 행복한 창조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어떻게든 자주 접해보고 경험하는 게 중요해요.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으면 잊히고 사라져버리게 되거든요.”
그가 이끄는 향토민속보존회에서 개최하는 ‘짚풀공예공모전’은 그러한 목적에 가장 충실한 사업 중 하나다. 지난 2014년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이래, 올해 2회째를 맞이했다. 출품작만 40~50점 정도이며, 작품의 종류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만드는 이들의 기량 또한 향상되는 걸 느낀단다. 전시장을 찾은 주민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짚풀공예를 알리고 보존해온 소중한 결실이다.
이야기끝에 김 회장은 공방 한 쪽에 서 있는 조형물을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실물에 가까운 누렁소다. “이 누렁소는 얼마 후 이 지역 학교 행사에 등장시킬 작품이랍니다. 여기에 바퀴를 달아서 전시도 하고 아이들을 태워줄 거예요. 짚으로 만든 소를 타보며, 좀더 재밌고 친숙하게 짚풀공예를 접할 수 있겠지요?”
끝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짚풀공예를 알리는 열정이 황소의 등처럼 든든하고 푸근하다. 처음에 무작정 좋아서 시작하던 그 마음은 이제 조금 더 깊어진 소명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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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8 숙련기술전수자 제 2018-02호. 고용노동부 선정
제2회 호조벌사랑 짚풀공예공모전 개최
2014 제1회 호조벌사랑 짚풀공예공모전 개최
2010 한국예술의 미, 독일초대전시회 개최
2011~2015 생금집(시흥시 향토유적 7호) 운영프로그램 수탁운영
2008 국가기능계승자(제 08-03호). 고용노동부 선정
2001 작은자리 자활 후견기관 짚풀공예사업단 참여
전통문화 강사자격 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