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큰 섬이다. 제주에 이어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크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가깝다.
이것뿐이랴.
김포, 인천 등과 이어진 다리만 네 개.
그러다 보니 강화를 섬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석모도마저 다리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섬으로서의 모습은 점점 찾기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강화도의 모습을 그 어느 곳보다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풍물시장에 가면 그런 생각이 바뀔 것이다.
글·사진_정환정 여행작가
농민이 직접 재배한
‘강화의 힘’
김장철을 앞둔 일요일, 풍물시장 건물 주위로는 이미 커다란 천막군락이 만들어져 있었다. 장날에만 만날 수 있는 상인들인데, 그 중에는 목에 명판을 달고 있는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무엇인지 가까이 가서 보니 강화군청에서 발급한 ‘농민확인증’. 농민이 직접 농사 지은 작물을 판매하고 있다는 증명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럼요. 이게 다 우리가 농사지은 것들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자신 있게 내놓고 팔지, 안 그러면 장터에 못 와요.”
평소엔 농민, 장날에는 상인이 되는 이들이 판매하는 건 대부분 밭작물. 그러니까 강화를 상징하는 순무와 속이 노란 고구마, 생강 같은 것들과 깨끗한 고추, 싱싱한 배추와 파 같은 것들이었다. 상인들은 “강화 땅이 좋아서 작물들이 전부 맛이 좋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으레 하는 자랑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강화는 여느 곳보다 땅의 힘, 지력이 좋은 곳으로 손꼽혀 왔다.
한국전쟁 당시, 다른 짐은 버리고 인삼 씨만을 안고 피난을 떠났던 개성의 인삼 농사꾼들이 강화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만큼 지력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게 강화 사람들의 이야기. 아닌 게 아니라, 강화에서 나는 많은 작물은 땅의 힘을 잔뜩 머금고 있다. 알싸하고 단단한 순무가 그렇고 약재로 사용되는 쑥과 민들레도 그러하며 달콤한 고구마도 모두 강화의 벌건 땅이 키워낸 것들.
그런 작물들을 키워낸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팔 작물을 손질하고 흥정하고 포장하는 모습에는 활기가 한 가득이다. 지나친 호객 행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운찬 목소리와 몸짓만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마치 강화의 땅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건물 안쪽의 상인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간판들. 보통은 가게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는 상인들의 상반신 사진도 함께 간판에 박혀있었다. 얼굴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한눈에 들어오는 간판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고객을 맞이하는 표정도 밝을수밖에 없다. 특히, 김장철을 앞두고 각종 젓갈을 사러 오는 베테랑 주부들과의 흥정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흥정의 주 종목은 새우젓. 매년 새우젓 축제를 개최할 만큼 새우젓에서는 전국 최고를 자부하는 강화답게,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새우젓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돌 정도. 음력 5월에 담근 것을 오젓, 6월에 담근 것을 육젓, 말복이 지난 후 담근 것을 추젓, 겨울에 담근 것을 백하젓으로 나누는데, 맛있기로는 육젓을 첫손에 꼽는다는 게 새우젓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 그렇다면 강화는 어떻게 새우젓의 메카가 된 것일까.
“강화도 앞바다는 민물이랑 바닷물이 만나는 바다예요. 한강이랑 임진강 물이 전부 이쪽으로 흘러들어오거든요. 그러니까 새우들이 먹을 게 많죠. 잘 먹은 새우들로 젓갈을 만들면 더 맛있을 테고요. 안 그래요?”
강화의 맛이 모인 그곳
끼니를 챙겨 먹을 시간이 돼 무작정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온통 밴댕이 천지다. 강화도의 또 다른 명물인 밴댕이를 이용한 음식만이 2층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한 바퀴를 돌아보자. 다른 음식을 파는 곳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찐빵이나 떡 같이 반죽을 해야 하는 음식 중 많은 수가 녹색을 띠고 있다는 것. 모두 강화산 인진쑥이 들어갔기 때문이란다.
그런 인진쑥이 들어간 반죽으로 만든, 피자를 한 판 시켰다. 전통시장에 피자 가게라니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스 불이라도 화덕에서 피자를 구워내는 모습이 제법 그럴듯해 보여 주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십여 분을 기다려 맛을 본 피자는, 그 어떤 피자 가게에서 판매되는 것보다 훌륭했다. 쫀득하고 깊은 풍미를 내는 도우와 풍부하게 토핑된 치즈는 어떤 아쉬움도 모두 사라지게 할 만큼 풍족한 맛이었다. 그리고 그게 강화의, 강화풍물시장의 맛인 것도 같았다. 모두를 넉넉하게 만족시키는 그런 맛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