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장의 낙락한 인생 돌의 결을 따라, 인생의 결을 따라 석공예의 맥을 잇다
    정정교 대한민국 명장(석공예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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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석공예 문하생 시절
1997 어렵고 힘들던 방황기
2000 문화재수리기능자 가공석공 274호 지정
2005 석조각공 3535호 지정
2008 첫 석공예 개인전
2010 전통공예 미술대전 석공예부문 첫 대상 수상
2010 첫 제자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상 수상, 스승의 길 발돋움
2011 석공예 제1호 우수숙련기술자 선정
2016 NCS 석공예 집필로 후진 양성(2016~2019)
2016 국제기능올림픽 선발전 심사위원(2016~2018)
2019 국제기능올림픽 석공예 직종 폐지 위기
2019 제639호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선정
 

세상 어디에나 흔하게 널려 있는 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혼을 부여할 작품의 대상이 된다.
돌을 보면 영감이 떠오르고 그 영감에 이끌려 망치와 정을 드는 이가 있다.
평범한 돌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에서 희열을 느낀다는 정정교 명장은 오늘도 도를 닦듯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돌 앞에 선다.
 

돌을 쪼는 석공의 모습에 반한 소년
강원도 산골, 석공이 망치와 정을 들고 다니며 맷돌을 쪼아 주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의 손길을 단호히 거부할 것만 같던 단단한 돌은 석공의 손길 아래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자유자재로 망치와 정을 휘두르며 돌을 다루는 석공의 모습은 소년의 눈에는 용맹한 전사만큼이나 근사해 보였다.

마음속 깊이 그 모습을 품고 있던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평생지기가 될 스승님을 만나 돌을 쪼는 석공예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덕분에 돌을 다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하생 생활을 처음 시작할 무렵엔 돌을 깎아서 동그랗게 만드는 연습을 했다. 단단한 화강암을 깎다 보면 손에 상처가 나기 일쑤였지만 워낙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청년은 마냥 일이 좋기만 했다.

“돌은 만지는 사람이 노력하는 만큼만 돌려줍니다. 열정을 쏟은 만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힘들어도 웃고, 집에서나 밖에서나 마냥 웃음 짓던 청년의 미소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장인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 자체를 즐겨라
하지만 돌과 함께하는 삶이 언제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좋았던 일이 벅차게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뚜렷한 목표 의식도 없을 때였고 젊은 혈기로 힘으로만 망치질을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무리가 왔다.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은 순간이었지만 공모전을 시작하면서 그 위기를 이겨냈다.

“그때는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만 앞섰던 것 같습니다. 정상만 보다 보니 아름다운 숲이 있어도 그냥 지나쳤던 거예요. 지금 후배들에게 항상 여유를 가지라고 얘기해 줍니다. 가는 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잊으면 금세 지칠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게 공모전에 나가고 얼마 뒤 개인전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업무를 마치고 혼자 남아 개인전 작업에 매진하기를 꼬박 1년. 아무리 고되고 아내가 핀잔을 줘도 그는 준비과정이 좋기만 했다. 그렇게 2008년 첫 번째 개인전을 무사히 끝냈고 이후로 2년마다 꾸준히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회는 총 9차례 열었고, 공모전에서는 45번 정도 입상했습니다.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자 아이디어를 얻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죠. 작업 방향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모전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왜 돌인가?

“전 돌의 투박한 질감이 좋습니다. 거칠면서도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게 취향에 맞아요. 그래서 기계보다는 정을 써서 작업하는 편을 선호하죠. 제 작품의 경우에는 보통 수작업과 기계 작업 비율이 8대2 정도 됩니다.”

돌은 딱딱하지만 결을 제대로 알면 나무보다도 쉽게 깰 수 있다고 한다. 돌의 질감에 따라 1결, 2결, 3결로 나눌 수 있는데, 물론 금방 구별 방법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작업을 해 본 사람, 그것도 3년 이상작업을 해야 확인할 정도라고 하니 장인이 되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추측할 수 있다.

“돌을 보면 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사람들에게는 그냥 돌로 보이겠지만 전 ‘저 돌로 뭘 하면 좋겠다’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본인을 맷돌지기로 칭하는 작가는 선조들이 쓰던 생활공예품을 주로 제작한다. 맷돌이나 약연, 절구, 다듬잇돌 등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던 물건에 예술3혼을 불어넣어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작가의 전시회에서는 전시품을 만질 수 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석공예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계기를 만들어 주고자 함이다.
 


옛날 석공예 장인들의 마음을 되짚어 보다
생활 공예품을 만들다 보니 100년, 200년 동안 불상을 만들던 스님들, 맷돌을 만들던 이름 없는 장인들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깃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궁금증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그때부터 문화 탐방과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70%가 석조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하지만 석공예를 배우는 사람이 없으니 관리할 사람이 없죠. 이렇다 보니 국제기능올림픽에서도 석공예 직종이 폐지되어서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결국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쌓아온 지식을 활용해 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집필했으며, 석조장예술인협회 서울경기지회장으로서 조선 왕릉의 기울어진 축대나 박석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뜻 맞는 사람들과 기꺼이 보수 작업에 나섰다. 그때의 보람은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나아가 나라 정, 바를 정, 가르칠 교, 운명을 따르기라도 하듯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명장. 오늘도 석공예를 많은 이들에게 전수해서 명맥을 이어가는 꿈을 꾼다. 이에 명장은 돌을 쪼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업데이트 2020-01-2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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