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깨끗하고 맑은 물을 보면 청(靑)이라는 글자로 표현한다.
이 글자로 만든 단어 중 하나는 청렴(淸廉)인데, 앞의 글자는 맑고 깨끗하다의 뜻이고, 렴(廉)이라는 글자는 높은 공직에 올라있거나 올랐던 사람이 곧고 바름을 유지함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청렴하다는 ‘깨끗하다’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깨끗함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했었다. 학교 도서관에 여러 학생의 편의를 위해서 무료로 사용 가능한 프린터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필자 역시 그곳에서 숙제를 출력해서 제출하곤 했었다.
어느 날 숙제를 하려고 부스를 찾았는데 프린터가 고장이 났는지 출력이 되지를 않았다.
급한 마음에 순간적으로 프린터에 꽂혀있던 A4용지를 들고, 출력할 내용을 손으로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나타난 도서관 사서가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도둑이라고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출력용 종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프린터가 망가졌다면 그냥 돌아섰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고 종이를 본래 목적이 아닌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도둑질이라고 설명하였다.
처음에는 나를 도둑으로 몰아세운 것이 못내 억울하여 부아가 치밀어 오르던 마음이 설명을 듣고 난 후에는 슬그머니 부끄러움으로 채워졌다. 나는 나름대로 청렴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A4용지는 공유물이지만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사용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돌이켰을 때, 회사의 비품들을 사용하는 데 부담을 갖거나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전혀 갖지 않았던 경험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청렴에 대해서 목소리 높였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는 청렴하다고 여기며 했던 행동들이 타국에서는 왜 부끄럽게 느껴졌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 속해있는 사회의 문화가 달라,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기준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문화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네이버 국어사전)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한 집단의 문화 속 청렴에 대한 인식은 한 두 명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이해하고 습득한 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 보았을 때, 타국의 청렴 문화가 한국에서 가졌던 문화보다 훨씬 정교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발표한 2018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7점으로 180개국 중 45위를 기록하였다. 덴마크가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 22위, 일본 18위, 중국이 87위를 기록했으며, 북한은 176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2018년도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전년 대비 3점 상승, 국가순위는 6단계가 상승한 것으로 정부의 반부패 개혁 의지와 노력이 차츰 결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OECD 36개국 중 30위를 나타내고 있고, 2008년 22위에서 2018년 30위로 순위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앞세워 청렴한 대한민국을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이것을 나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 역시 청렴 문화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청렴 실천에 대상자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우리는 각자 맡은 자리에서 사소한 부조리부터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생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것, 상인이 저울을 속이지 않는 것, 건축업자가 정량의 자재를 사용하는 것, 공직자가 원칙과 규정을 지키는 것 등이 모두 청렴의 출발이자 우리나라를 청렴강국으로 이끌 원천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청렴한 대한민국의 책임자라는 인식으로, 오는 2020년 1월에 발표될 부패인식지수에서 대한민국의 도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