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 마음을 움직이는 일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외국인이라 마음에 차지 않으셨고, 시누이가 4명이나 되는 집안에, 장남의 아내로 추석 때마다 음식을 하는 힘겨움도 컸다. 그러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가기만 했다.
그럼에도 일은 끊임없이 했다. 처음에는 공장에서, 이후에는 노인요양보호사, 코웨이 코디까지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찾지 못했다. 30대 초중반이었던 나는 어느덧 40대가 되었고, 점차 가정이나 친척과의 관계도 안정이 되고 나니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새로운 길을 내어보고 싶다’,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하루, 서점으로 가서 관광국사, 관광개론, 관광법규, 관광자원해설에 대한 책을 모두 구매하고, 관광통역안내사 모의필기시험을 치를 수 있는 교재, 2차 면접 예상질문집과 같은 책들을 다량으로 구매했다. 바리바리 무거운 책을 집으로 가져오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도전 : 실패에 따른 성공
관광통역안내사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언어자격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 필기에 응시해야 한다. 필기시험 과목은 근현대사를 포함한 국사, 관광자원해설, 관광법규, 관광학개론으로, 이중에서 ‘국사’의 배점이 40%, 나머지 과목이 각각 20%씩 60%를 차지한다.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한국어와 자신의 언어(자격증)를 이용한 문답형식의 인터뷰가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어려웠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1년을 독하게 공부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필기시험에 통과했다. 공부해온 시간을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면접에서는 탈락했다. 변명을 하자면 고사장의 영향도 있었다.
부산에서 학원을 다니고 창원에서 공부했으나 고사장을 서울로 택하면서, 낯선 도시에서 시험을 보게 된 것이다. 서울 관광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잘 하지 못했고, 특유의 분위기에 기가 눌렸다. 당시에는 너무 아쉽고 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된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좀 더 탄탄한 지식을 쌓아갈 수 있었다.
과정 : 그림을 그리듯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어렵기만 했던 과목들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그 비결은 ‘공부하는 법’에 있었다. 활자를 마냥 외웠던 옛날과는 달리 관광지마다 깊이 파고 들어가며, 배워가는 쾌감을 느꼈다. 몰랐던 한국의 음식, 건축, 관광지, 문화재, 하나하나 들여다 보니 모든 곳에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었다.
과목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공부한 내용이 이해되고 즐겁게 느껴지니 자신감이 저절로 생겼다. 필기도 면접도 처음처럼 떨지 않았기에, 면접관의 질문에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차분히 대답했다. 그렇게 두 번째 도전에서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지금 : 익숙했던 것들이 특별해보이는 마법
지금은 프리랜서로 관광협회의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고, 교육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학습의 목적도 있지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문화재나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 즐겁다. 평소에 지나쳤던 한국의 모든 것들이 무엇 하나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단아하고 소박하면서 그 속에 씁쓸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것들이 한 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강대국 사이에서 이만큼 성장한 나라, 케이팝이나 드라마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나라. 관광통역안내사 공부는 내게 익숙한 것들이 특별해 보이는 마법을 선사해주었다.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땅에 대한 사랑을 찾고,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미지근하고 답답한 여름에 부슬비가 내리는 것처럼 마음속에 조용한 평화가 내려앉았다.
자격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결과만을 쫓아가다가 어느새 목적지를 잃고 만다. 열매가 맺어지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수록 그 맛은 모든 것을 보상해주듯이 달콤하고도 포근하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