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과 부패 면역력 강화
    채영수 前 포스코ict 상임감사
  • 4326    

한 대학병원 엘리베이터 홀에 붙어있는 청탁금지법 관련 안내문을 보고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사태로 인간관계의 단절과 같은 상황이라 역설적이지만, 선물과 청탁금지법의 관계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직업병이라 해야겠다.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제정의 계기가 된 <벤츠 여검사 사건>을 기억한다. 변호사가 내연관계인 여검사에게 벤츠 승용차, 신용카드 등을 선물하고 재판 관련 청탁을 했는데 대가성과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아 처벌하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을 크게 불러 일으켜 공직자가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청탁금지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청탁금지법은 직무 관련성 여부를 잣대로 금전은 물론 모든 재산적 이익, 접대, 편의 제공, 기타 유·무형 경제적 이익의 수수를 일부 예외만 인정하고 거의 금지하고 있다. 선물도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선물은 원형적인 인간 행동유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그의 책 『증여론』에서 ‘자발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의무적’이며, ‘줄 의무·받을 의무·보답할 의무’로서 고대사회의 ‘선물’이라는 사회현상에 주목하였다. 그만큼 선물은 사람들 사이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이면서도 사회관계를 구속하는 부담으로도 기능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사를 하면 간단한 먹거리를 마련하여 이웃에게 인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사회 환경과 생활양식의 변화로 많이 줄었지만, 선물은 여전히 우리 일상생활에 다양하게 개입하여 사회관계를 매개하고 있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일이고 선물을 받으면 대부분 기분이 좋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호의적으로 만들고 싶을 때 선물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선물이란 주고받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받으면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어서 관계의 지속성이란 측면도 있다. 다만 선물의 좋은 의미를 개인의 이득을 볼 기회로 악용할 때가 있어서 특히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선물에 경계심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 옛날에도 선물은 공직자에게 경계의 대상이었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牧民心書)』 율기(律己)편에서 “선물로 보낸 물건이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은혜로운 정이 거기에 얽혀 있으니 사사로운 정은 이미 오고 간 셈이다”라고 하였다. 선물이 사람 관계를 따뜻하고 원활하게 하는 순기능은 잘 살리면서 이를 악용하여 관계의 파탄을 부르고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행위를 지혜롭게 차단할 수 있다면 행복한 신뢰 사회에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을 듯싶다.

코로나19 감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는 강력한 방역망을 설치하고 있으나 일부 감염은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각 개인이 감염 예방수칙을 잘 지키고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 이런 점은 부패, 부정청탁 그리고 부적절한 선물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탁금지법이나 공직자행동강령 등 법규제를 방역망에 비유할 수 있다면 청렴 교육은 예방 홍보교육, 개인의 청렴 의식이나 법규 이해력은 면역력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하나인 묵자(墨子)가 말했다는 선물 칠불수계(七不受戒)는 부패 방역망의 허점을 메우고 부적절하고 애매한 선물을 골라내고 물리치는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나의 신분이나 직위가 상승했을 때는 받지 아니한다.
2. 나와 나의 직계가 아닌 방계의 길흉사에는 받지 아니한다.
3. 내가 상대방의 처지에 이득이나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을 때 받지 아니한다.
4. 나의 권한을 의식한 것일 때 받지 아니한다.
5. 명예나 명분에 결함을 가져오거나 할 때 받지 아니한다.
6. 합당한 정표보다 값비싸고 큰 것일 때 받지 아니한다.
7. 평소에는 그러지 않다가 갑자기 보내온 선물은 받지 아니한다.

 

업데이트 2020-04-29 22:39


이 섹션의 다른 기사
사보 다운로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