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엽 스님은 우리 산야에서 나는 꽃과 풀로 차를 만드는 인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몸의 면역과 건강이 다시금 큰 화두로 떠오르는 지금, 선엽 스님이 만드는 약차는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자연의 영양과 만드는 이의 정성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우리 몸을 자연과 가깝게 만드는 일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선엽 스님을 만나보았다.
내 몸을 구한 자연 속의 풀과 꽃
맑고 밝다, 남양주 화도읍의 찻집에서 만난 선엽 스님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소녀 같은 미소와 유독 반짝이는 눈망울로 일행을 맞이한 선엽 스님이 제일 먼저 따뜻한 차를 내온다. 스님이 직접 만든 달큰한 유자차가 목울대를 넘어가자 따뜻한 봄이 몸 안에 찰랑찰랑 차오르는 느낌이다.
선엽 스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차 전문가이다. 그의 차가 특별한 이유는 명상과 힐링을 넘어 치유와 치료를 위한 약차이기 때문이다.
“제가 차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출가 이후였습니다. 절에서 수행하고 서울로 유학을 와 병원법당에서 일을 했는데 하루에 5천 잔씩 병원 로비와 병실에서 환자들에게 차를 나눠줬어요. 차에서 종교를 초월한 힘을 느끼며 환자들과 함께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지만, 잘 쓰러질 정도로 몸이 약했던 터라 결국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곳을 나오게 됐습니다.”
깊은 산 암자로 들어갔던 그는 사지마비의 고통으로 나쁜 생각까지 할 정도로 깊은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그랬던 그를 구원한 것이 바로 들판이며 바위틈, 산등성이에 양탄자처럼 깔린 풀과 꽃들이었다. 본래 차의 효능이나 성분을 궁금해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초를 보면서 ‘차 만드는 거에 접목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약차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꽃을 피웠지만 선엽 스님은 돌이켜보면 그 근간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 저는 입도 짧고 몸이 너무 약해 어른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한의원을 하던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시던 약재를 먹고, 봄에는 쑥을 캐 쑥떡을, 다쳐서 피가 나면 치자를 찧어 밀가루를 섞어 붙여주던 어머니 밑에서 컸지요. 그때는 몰랐는데 어릴 때부터 저는 어머니를 통해 자연이 만들어주는 약효와 효능을 체험해 온 셈이었더라고요.”
선엽 스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혈색과 잔잔한 미소로 찻잔에 차를 조르륵 따랐다.
정성과 기다림의 수제 약차 만들기
선엽 스님의 약차는 오랜 기다림과 정성 속에서 탄생한다. 쑥차를 만드는 과정을 한번 들어보자. 절기에 맞는 꽃과 풀이 가진 특별한 힘을 믿는 선엽 스님은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면 쑥차를 만드는 것을 잊지 않는다.
따스한 봄볕 아래 쏘옥 올라온 쑥을 채취한 뒤 먼저 살청한다. 쑥의 산화를 막고 작은 벌레들을 잡아내기 위해 솥에다가 덖는 과정이다. 그다음에는 유념한다. 유념은 차가 잘 우러나도록 쑥을 비벼서 상처를 내는 것으로 이 과정을 거쳐야 차를 만들었을 때 쑥의 섬유소나 영양분이 잘 우러난다.
그리고 다시 덖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차의 맛을 결정하는 것으로 시간과 온도에 따라 구수한 맛 혹은 신선한 맛을 선택할 수 있다. 완성된 쑥차는 그냥 보관하지 않는다. 햇볕에다가 세청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강한 정오의 햇빛을 통해 차는 다시 비타민을 채운다. 마지막은 숙성이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의 차 맛을 안정시키고 행여 있을지 모르는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5~7일 정도 숙성을 하고 나면 맛도 향도 안정적으로 우러난다.
“차는 긴 공정의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차의 성분과 효능, 기다림의 시간이 더해져서 그 효과를 제대로 보는 거지요. 이게 평범한 풀이 약차로 변하는 과정입니다.”
선엽 스님의 약차는 사계절 내내 마실 수 있다. 뿌리와 줄기, 잎, 열매도 차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 계절별로 그 쓰임이 다르고 부위별로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봄의 식물은 사람 몸의 기운을 북돋워 주고 여름의 꽃차는 가슴에 막혀있는 것들을 풀어줍니다. 가을에는 열매 차를 통해서 강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요. 또 겨울에는 뿌리에 영양이 응집되면서 면역력을 키워줍니다.”
15년간 약차를 연구하고 200여 종의 약차를 개발해 세상에 내놓은 선엽 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차, 사람과 사람을 잇다
스님과의 차담이 길어지자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찻주전자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뽀얗게 피어오르는 김,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차향, 온화한 차 맛까지 이 모든 것이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다.
“저는 차를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건강하기를 바라요. 그리고 차를 통해 화합하고 소통하고 단절된 대화가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차를 계속 마시다 보면 대화는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물이 끓고 차가 우러나는 동안 서로 눈빛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지요. 차를 따르는 동안은 마음이 안정되고 집중하게 되어 결국 명상효과를 가져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든 지금, 선엽 스님은 첨단기술의 결정판인 이 시대에 ‘차’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지금은 문화, 예술, 의료, 교육, 명상, 건강, 산업이 함께 집약되는 융복합 시대입니다. 4차산업이 발달해 첨단 기술혁신을 이루어도 우리는 모두 인간 본연의 마음, 인간성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차 문화로 비즈니스를 하고 오픈된 곳에서 사업을 하면서 4차산업의 기반인 커뮤니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인간성 회복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4차산업이 아무리 융성해도 공허할 테니까요.”
선엽 스님이 다시 빈 잔을 작두콩차로 채워준다. 티백으로는 느낄 수 없는 진한 차향과 함께 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스며든다. 코로나19로 인해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청했다.
“코로나19로 우리 삶을 한번 되돌아보면 어떨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려움 이전에 황금만능주의적인 우리 삶, 생명에 대한 경시, 자연환경 파괴 등으로 점철되어온 우리의 삶의 방식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지요. SNS에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의 재료로 차를 만드는 방법도 공개해놨으니 종교를 떠나 함께 차를 만들면서 가족들의 면역력도 키우고 행복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를 통해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며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얻었다는 선엽 스님.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널리 전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산야초 꽃약차 아카데미’를 열고 저 멀리, 중국, 미국까지 넘나들며 강의와 방송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우리 몸은 마음 그릇을 담고 정신 그릇을 담는 토대입니다. 몸이 지저분하고 혈액이 탁하고 바이러스가 많으면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어요. 몸을 먼저 해독하고 치유하는 게 건강을 위한 첫 번째 단계임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