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상의 세계를 향한 경외, 꽃살창호
    임종철 대건목공 대표 우수숙련기술자 (창호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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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세계를 향한 동경은 그의 나이 서른다섯의 일이었다.
목공 일만 수십 년이 넘도록 해온 그였지만, ‘꽃살창호’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세상으로의 입문이었다.
부안 내소사 꽃살창호를 보고서 경외감에 사로잡힌 그는 그길로 꽃살창호 43년의 외길 인생을 걸었다고 했다.
하나, 또 하나 계속해서 정진하고 보태어 수백 가지의 꽃문양을 탄생시킨 그는 전통건축의 창호쟁이 중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꽃살창호를 말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손기술로 부단히 노력해온 삶
창호의 문살은 ‘문양’을 새김으로써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문살의 형태에 따라 띠살, 용(用)자살, 아(亞)자살, 만(卍)자살, 빗꽃살, 솟을꽃살 등으로 나뉜다. 사찰의 주 전각인 대웅전, 극락보전, 천수전 등 신앙의 대상을 모시는 전각에 새긴 꽃살창호는 천상 세계의 꽃을 표현한다. 광주 북구 매곡동에 위치한 임종철 우수숙련기술자의 공방에는 이러한 ‘꽃살창호’로 재탄생하기를 기다리는 나무와 주인의 손때가 묻은 각종 도구가 빼곡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16세 때 친구의 소개로 처음 목공 일을 시작했다. 당시 열여섯 어린 나이였지만, ‘기술’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판단에 전남 화순에서 선배들을 따라 이곳 광주로 터를 옮겼고, 전통창호와 개량창호를 위주로 기술을 익히고, 틈틈이 광주로 ‘유학’온 수많은 학생의 자취방에서 필요한 책상, 책꽂이, 서랍장 등을 만들면서 각종 가구 제작 기술을 익혔다.

그때만 해도 가구는 전부 사람의 손을 거쳐야 완성되었던지라, 성실히 기술을 익히면 월급도 곧잘 오르곤 했다. 그러다 옆 공방에서 ‘뒤주(나무로 만든 곡식을 담는 궤)’ 만드는 일을 한다는 소식에, 그 길로 밤이면 그 공방을 찾아갔다.
 


“그때는 공방이 지천으로 있었어요. 내가 일하는 공방보다 조금 떨어진 데서 뒤주를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일이 끝나면 그 공방에 가서 뒤주 만드는 걸 배우면서 그 순서를 수첩에 일일이 다 적고 그림도 그렸어요. 그러다 하루는 우리 공방 사장님이 ‘종철아, 우리 공방에 뒤주 만드는 일이 열 개는 들어왔다. 네가 한번 해볼래?’ 물어보더시라고요. ‘저 할 수 있습니다!’ 하고서 한 두세 개를 재빠르게 짰지요.”

‘뒤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기술자 사이에서는 ‘집을 지을 수 있다’라는 말과 통했다. 구조물의 크기가 달라도 그 ‘짜임’이 같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꽤 기술력이 필요한 ‘뒤주’ 만들기에 성공한 후로는 전과 세 배의 월급을 받았다.

“기술을 처음부터 잘한다는 건 어림도 없습니다. 한 해 겨울 내내 발에 얼음이 들어 고생하면서도 무작정 야간작업을 했지요. 대패질부터 시작해서 끌질이며, 톱질, 먹넣기, 못하는 게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기술을 익히고 나니 경력 3년 된 사람이 내 아래에서 기술을 배울 정도였으니까요.”

이후 1977년, 그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대건목공을 설립했다. 열여섯에 시작한 일을 멈추지 않고 해왔으니 기술력에는 자신 있고, 신임만 쌓으면 될 것이었다. 결혼 후, 온 가족이 함께 살 주택을 짓는데도 공방과 살림 공간을 이어서 구상할 정도로 심취했으니, 믿고 맡기지 못할 일이 무엇이었으랴.
 


공양으로 빚은 꽃살창호,
천상세계로 향하다

그러다 어느 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장이었던 이지관 스님이 정릉에 있는 서울 경국사 극락보전의 꽃살창호를 제작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그는 전국 사찰을 돌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 부안 내소사 꽃살창호를 보고서 마치 기술을 익히던 처음으로 되돌아간 듯 부끄러웠다고 회상한다. 기술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내소사의 꽃살문은 인간이 살아가는 속세가 아닌 천상의 세계였어요. 그 꽃살창호를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것을 안 해보고 죽는다는 것은 문 짜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 길로 사찰에 쓰이는 나무의 재질이며 문 짜는 기술을 밤낮으로 연구했다. 늦은 나이에 건축공학과에 입학해 건축공학 석사에 이어 문화재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해가며 그 기술을 구현해내고자 애를 썼다. 공방에 놓인 법륜 솟을문살, 정자 문살, 매화 정자 쌍여닫이문 등은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도면과 디자인, 전체적인 짜임 기술이 모두 다 어우러져야 꽃살 창호가 됩니다. 일반창호는 모듈[module]을 잘 이해하면 만들 수 있지만, 꽃살창호는 문화, 사상, 철학, 정신세계를 모두 이해해야 할 수 있는 영역이지요.”

창호(窓戶)는 창과 호가 결합한 말로, 엄격히 구분하면 창은 채광이나 환기를 목적으로 하는 window, 호는 출입을 목적으로 하는 door에 해당한다. 전통창호의 경우, 이 두 가지 뜻을 모두 담고 있다. 더욱이 사찰에서 창호는 세(世)를 떠나 극락의 세계로 통(通)하는 매개체로 본다.

“국가 간의 문은 항구와 항공, 집안의 문은 대문, 사찰의 문은 일주문이라고 해요. 그 사역에 들어가면 부처의 세계로 가는 거예요. 가령, 순천 선암사 승선교는 배를 타고 극락세계로 간다는 뜻이에요. 그 안에는 아미타여래의 궁궐, 즉 근정전과 같은 공간에 들어서는 또 다른 문이 있지요? 그 문에 꽃살창호를 새기는 겁니다.”
 


그는 꽃살창호는 숭고한 일이며, 부처에 대한 공양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쌓인 세월이 올해로 43년이 되었다. 그가 공양하는 마음으로 빚은 꽃살창호는 광주 무등산의 규봉암, 곡성 성륜사, 만연사 선정암 등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 세월, 틀어지지 않고 그 모양을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기술력인가. 무엇보다 그는 후대를 위해서라도 어떠한 작업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숙련기술전수자로 활동해왔어요. 제가 작업한 이 모든 것이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것인데, 책임감을 느끼고 해야지요. 여태 만들어온 작품과 기술 전수에 관한 내용을 담아서 창호박물관을 여는 것이 내 꿈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계속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할 줄로 압니다.”

작업실 곳곳에서 묻어나는 꽃살창호에 대한 애정이, 끊임없는 연구와 성찰이 수양자의 모습과 닮아있는 듯했다. 그의 기술 전수에 대한 꿈이, 세월을 견디고 단단해질 작업물들이 후대에도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수 숙련기술자가우수 숙련기술자가
되기 위한되기 위한
3가지 조건3가지 조건
부단한 노력

기술을 하루 아침에 배운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계절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해야 한다.

기록하는 습관
기술을 배우면 꼬박꼬박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그것만 보면 순서와 원리를 다 알 수 있다.
후대를 위한 마음가짐
내 기술이 후대에 길이길이 남는다는 생각으로 작은 것을 하더라도 책임감 있게 완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업데이트 2020-07-0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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