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이 최고의 정책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허구와 가짜가 권력이 되는 세상인 것 같은 분위기는 무엇일까. 청렴이 국가를 바로 세운다고 교육받은 사람들, 반면에 가상의 여론은 현실의 여론을 지배하게 되니 인공지능 환경에서는 모든 것이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이들이 ‘공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30여 년 전에 관람했던 미래예측 영화가 생각이 난다. 지구인 대부분 핸드폰 한 대 이상을 소유하며 아침에 눈을 뜨면 잠들 때까지 그 기계에 얽매여 살아가리라 예측한 영화였다. 그 당시 약간의 충격과 ‘이건 영화니까’라며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설마가 현실이 됐다. 대다수가 핸드폰의 최적화된 사용법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는데, 기계에 적응도 하기 전, 무수한 알고리즘과 정보로 인해 무인도로 떠밀리고 있다. 그냥 떠밀리기만 해도 괜찮다. 떠밀리면서 정보가 수집되어 다양한 영역의 데이터에 기록되고 있으니 어찌 괜찮을까 말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청렴의 가치와 정직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전개하고 데이터화해서 알고리즘으로 만들지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급하다. 어찌 됐든 국민들은 모두가 나약해진 마음과 너덜거리는 심장으로, 분노와 질타로 합체되고 있다. 나라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떳떳한 부모, 자식, 스승, 제자가 되기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책상 위 노트북을 통해 날아온 데이터로 보고 받고 클릭하는 사람들이 국민들의 눈물에 접근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같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더 빠르게 변화해야 하는 집단은 어디일까? 국민과 대중이라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예민하고 정직한 대처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국민의 행복을 정직 데이터로 매뉴얼한 알고리즘은 어디에 주문(?)하면 될까? 청렴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1+1 하면 전 세계적인 구독은 일어날까?
전 세계 20억 SNS 페*** 가입자들의 손끝에 행복의 가치 IP주소를 Ctrl+C 할 수 있을까? 초등 1·2학년 수학을 AI가 가르친다고 하는데 청렴 의식을 함께 탑재할 수 있을까? 미래는 과거와 같지 않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운다고 했던 마크 앤드루스의 말처럼 기술의 관점에서 새로운 의식과 운동성이 재정의되어야 한다. AI의 꼼수를 읽은 이세돌의 신의 한 수, 78수는 인공지능도 버그가 나게 한다는 걸 우린 경험했다. 이세돌처럼 알파고의 꼼수를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AI의 변형된 데이터를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세상을 바꿔온 것은 상식이 아니다. 사회의 가상화로 인해 이제는 구호 대신 가상공간인 셜미디어 안에서 엔터키를 누른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당선된 첫 미디어 대통령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청렴도 행복도 국민의 살 권리도 미디어 안에서 ‘좋아요’를 받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받아들이는 건 아이러니일까.
우리는 불안하다. AI는 우리가 호흡하는 동안 몇만 분의 1초가 채 되기 전에 이미 모든 일상 속에, 소지품에, 심장에, 머리에, 손가락 끝에 Ctrl+C 되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면 이내 Ctrl+X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여전히 아날로그 매뉴얼을 섬기고 있다. 첫 번째, 개인적인 차이를 넘어 차별하지 않는다. 두 번째, 본인의 할 몫을 다한다. 세 번째, 함께 협력한다. 네 번째, 욕심을 버린다. 다섯 번째, 진실하게 정직하자.
여섯 번째, 공공의 배려를 한다. 이 여섯 가지의 덕목을 지키면 청렴한 인간이 된다고 한다. 청탁의 유혹을 이겨내면 청렴할 수 있다고 나지막이 교육한다. AI는 부정부패 비리 인물을 데이터화하고, 안면인식으로 범죄자를 색출하고 범죄 유발 가능자 은신처 부근에 경찰차를 출동시키고, 무단횡단한 시민을 전광판에 게시하고, 예측 가능한 범죄예방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는데 말이다.
청렴에 대한 알고리즘을 정의하자. 정직이 최고의 정책이 된다는 말을 AI가 답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보자. 우리가 정의하고 있는 청렴의 가치를 인공지능도 합의하는 그런 날을 그려보자. 그래서 가상의 공간에 정직한 현실 공간의 알고리즘을 수시로 업데이트 하자.
상상만으로도 신나고 건강한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