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분야에서 ‘명장’이라는 호칭은 유독 까다롭게 주어진다.
명장 제도가 시작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조리 부문 명장이 지금껏 겨우 14명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요 국가 행사 만찬부터 주방 막내를 보듬는 따뜻한 손길까지 대한민국에서 요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2020년 대한민국 요리 명장 선정으로 주목받은 남대현 총주방장을 만나보았다.
국수 삶던 소년, 요리사가 되다
남대현 명장의 요리를 이야기할 때 어머니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운영했던 작은 식당을 오가면서 주방에 머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국수를 삶거나 국물을 제법 잘내는 ‘요리에 소질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음식 만들기에 소질을 보였던 소년은 아버지의 추천에 따라 자연스럽게 요리의 길로 들어섰다. 제대 후 경주호텔학교의 조리과에 입학을 한 그는 이듬해 1986년 롯데호텔 조리팀에 입사함으로써 마침내 요리사로 첫발을 떼었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제일 먼저 주방을 먼지 한 톨 없이 쓸고 닦고 광을 낸 뒤에 카트를 끌고 창고에 가서 그날 사용할 향신료, 채소, 육류, 유제품 등을 꺼내 착착 쌓고 그걸 다시 주방에 끌고 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면 뒤늦게 출근한 선배 요리사들이 카트에서 식자재들을 찾아 요리를 시작하는 코스였다.
“그러다가 조금 직급이 올라가면 작은 분야를 맡기 시작하는 거예요. 소스만 계속 끓이다가 샐러드 파트로 가고 이런 식이었죠. 고기는 정말 경력이 어느정도 되어야만 만질 수 있는 거였어요.”
양식으로 시작했지만, 남대현 명장은 호텔 업장의 특성상 한식부터 일식, 중식까지 모든 요리를 섭렵했다. 배우는 모든 과정이 길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배들에게 레시피 하나 제대로 얻기 어려웠던 때였다.
“고된 일과 속에서도 영어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원서로 된 양식 레시피를 보려면 반드시 외국어 공부가 필요했죠. 지금이야 어학연수와 유학을 많이들 다녀오지만 그 시절에 이미 취업을 한 상태에서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국빈 만찬 진두지휘,
요리로 민간외교의 꽃을 피우다
롯데호텔 본관에서만 31년을 근무했던 그는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국가행사를 치러냈다. 양식으로 출발했지만 한식, 일식, 중식, 베이커리, 뷔페 등 다양한 요리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지에 이르렀고 특히 국빈행사의 만찬에는 한식이 제공되기 때문에 남대현 명장에게 한식은 양식과 더불어 남다른 애정의 대상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국빈행사 만찬의 음식들을 책임진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책임감과 압박감을 수반하는 일이다.
“국빈행사의 경우 저희가 제안하는 메뉴는 전통한식, 모던한식 그리고 퓨전한식입니다. 예로 프랑스 대통령이 온다면 저희가 준비한 메뉴를 가지고 가서 청와대 관계자, 외교부 자문위원 등과 회의를 해요. 방문국가의 특색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는데 제일 까다로운 곳은 인도나 아랍 쪽입니다. 워낙 가리는 음식들이 많아서요. 초대 손님이 미식가인 경우에도 긴장이 많이 되죠.”
지금도 남대현 명장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두 나라 대통령을 위한 어느 만찬이다. 메인요리로 미국산 쇠고기와 한우 갈비 두 가지를 콤비로 내놓았는데 한국과 미국을 한 접시 위에서 만나도록 한 이 스토리텔링에 미국 측에서 열광한 것이다.
청와대의 국빈행사, G20 정상회의, 평창동계올림픽개·폐막식 만찬 등을 주관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한식요리를 내놓은 그는 명실상부한 민간외교의 선봉장이자 주인공으로서 그렇게 명성을 쌓아갔다.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열다
남대현 명장을 이야기할 때 요리는 당연히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요리보다 남대현이라는 인간에 더 집중한다. 총주방장, 명인, 명장 등 묵직한 타이틀의 유무와 상관없이 늘 한결같은 진심을 보여주는 그의 인성 때문이다. 입가에는 늘 푸근한 미소를 띠고 선배들을 깍듯이 모시면서 후배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그의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왔다. 여기에 매사에 긍정적인 특유의 성향은 그의 손길이 닿는 요리에서도 사뭇 다른 에너지를 자아내 왔다.
“너무 힘들거나 침체된 분위기 혹은 짜증 속에서 요리를 만드는 건 요리사로서 결격 사안입니다. 치밀할 때는 치밀해야 하지만 편안한 얼굴에서 나오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얼굴에서 나오는 음식은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요리에는 인문학, 예술, 과학 등 수많은 요소가 균형있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무엇보다 후배들이 편안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리더다. 까마득히 어린 후배들을 데리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고충을 들어주고 누구나 즐거운 환경 속에서 요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안팎을 살펴온 그는 직무교육의 체계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호텔 메뉴와 조리 직무에 대한 표준작업 지침서를 발간하는 등 선제적인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강의나 대회 심사, 주방에서 수많은 젊은 요리사들을 만납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친구들도 많지만, 끈기와 참을성이 부족해 보이는 건 좀 아쉬워요.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어딨겠습니까. 욱하는 성질로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지요. 그렇다고 해서 젊은 친구들에게 옛날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 방식을 고집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아니까요.”
남대현 명장은 평생을 바쁘게 살아온 인물이다. 미슐랭을 받은 요리사로서의 삶,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석사를 거쳐 박사까지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학문의 길까지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시간이 그를 ‘명장’의 길로 안내했다.
“일신이 조금 자유로워지면 한식 세계화에 공을 들이고 싶습니다.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대한민국의 특산물을 발굴하고, 농민과 어민을 위한 메뉴 개발을 비롯해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이를 토대로 한식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남대현 명장의 삶은 요리와 닮아있다. 좋은 식자재를 골랐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쌓았다. 다 놔버리고 싶은 숱한 순간을 이겨낸 것은 결국은 이 요리를 덕분에 행복해질 ‘나’ 혹은 ‘누군가’를 위해서였다.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는 신념으로 명장의 소임을 우직하게 다하고자 하는 남대현 명장. 그가 걷는 길이 곧 대한민국 요리의 미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명장이
되기 위한 조건
1. 명확하고 체계적인 꿈을 가져야 한다
팀장, 총주방장, 명인과 같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2.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정돈하라
내가 걸어온 구체적이고 상세한 기록, 경력 등은 매우 중요하다. 평소에 정리·정돈하라.
3. 인맥을 만들어라
요리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아는 게 많으면 그만큼 좋은 요리를 내놓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