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메랄드빛 희망
    용접면을 쓴 채 흑 유리를 통해 보면 밝은 에메랄드빛으로 보인다 - 박혜란(홀리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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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1 사회복지사, 내겐 맞지 않는 옷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라는 글자가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기관에 어필할 만한 대외활동도 없었고 학점이 특출하게 좋은 편도 아니었기에 취업 강사와의 1:1 면담에서 자꾸 어깨가 좁아졌다.

내 태도가 애매하다고 생각했는지 강사는 취업할 생각은 정말 있는 거냐고 재차 물었지만, 쉽사리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사회복지학과 학생이었다. 매년 캠퍼스에는 졸업한 선배들의 공무원직 합격 플래카드가 걸렸다. 하지만 나는 졸업에 필수인 두 번의 기관 실습을 마치고 나니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내게 맞지 않는 옷임을 깨닫고 말았다. 당시 나의 나이는 25세였고,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과감히 사회복지사의 길을 뒤로 하기로 했다.
 

Story. 2 뜻밖의 권유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니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에 공감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대부분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으냐는 반응이었다. 한 친구가 내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들으며 자신의 취업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친구는 내게도 용접사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권했다.

“내가 평소 여자치고는 거친 면이 있지만, 무리가 있지”하고는 돈은 많이 벌겠다 하니 친구가 용접사의 평균 일당을 알려주었다. 개인 역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기본 일당이 꽤 높은 편이었다. 친구는 꼭 건축현장이 아니어도 철강, 제조업 공장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용접기술이 두루 쓰인다고 덧붙이며 국비 지원과정도 알아보면 코스가 다양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도 본격적으로 특수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딸 계획이라고 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나의 마음에 어느샌가 ‘용접사’라는 단어가 꽉 채우고 있었다. 그날부로 나는 용접사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용접사가 되는 법이나, 용접사가 취업할 수 있는 분야나 전망 등에 대해 다각도로 조사했다.
 

 

Story. 3 용접사 무료지원 교육과 한 달간의 실습
친구는 특수용접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폴리텍대학교의 특수용접과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동아줄을 잡은 것처럼 폴리텍대학교 특수용접과에 지원서를 냈고, 합격하여 1년
동안 용접 이론과 실습수업을 수료했다. 전체 인원 60여 명 중 5명만이 여성이었다(이것도 보통 때는 2, 3명에 그친다고 했다).

처음엔 용접 스패터가 튀고 왱 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그라인더에 지레 겁을 먹기도 했으나 차근차근 따라하니 아주 어려운 점은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척척 가스절단을 해내고, 용접기에 달린 아르곤가스통을 능숙하게 교체하게 되었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나고 짧은 여름 방학 때 나는 교수님의 소개로 기업체에 나가 한 달 동안 실습했다. 그곳은 압력용기, 열교환기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특수용접으로 분류되는 아르곤용접 및 로봇 플라즈마 아크용접까지 두루 쓰이는 곳이었다.

용접 팀장님은 실습생인 나에게 조언과 기술 전수를 아끼지 않으셨고, 한 달의 짧은 실습이 끝났을 때 나는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하던 대학교 4학년 때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Story. 4 졸업 후 취업
그곳에서 만난 나의 남편은 지금도 종종 그때 이야기를 한다. 열심히 눈을 빛내며 수업을 듣던 내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자신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었다고. 나는 그렇게 특수용접과의 1년을 누구보다 값지게 보내며 특수용접기능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지금도 종종 힘들 땐 그때를 생각하면서 내게 허락되지 않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힘을 얻곤 한다.

나는 특수용접학과 교육 이수중 여름방학에 실습했던 기업과 인연이 되어 졸업 후 그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이직했지만, 마지막엔 직접 로봇용접기를 조종하여 가장 핵심이라 부를만한 열교환기 탱크 몸체의 용접을 하기도 했다.

남편 역시 특수용접기능사 및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취업에 성공했고, 그때 만났던 친구들은 우리에게 ‘부부 용접단’ 이라는 귀여운 별명을 붙여주었다.

Story. 5 내가 본 에메랄드빛 희망
용접을 할 때 쓰는 용접 면에는 흑유리가 끼어 있다. 용접할 때 발생하는 밝은 빛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시광선을 차단해주는 물질로, 용접부위를 제대로 관찰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다. 금속을 녹이기 위해 가하는 아크의 온도는 순간적으로 3,000℃까지 올라간다. 거의 태양의 흑점에 가까운 온도다.

그 부분을 용접면을 쓴 채 흑 유리를 통해 보면 밝은 에메랄드빛으로 보인다. 결함이 없는 용접을 하려면 그 부분을 잘 보며 용융 풀(용접할 때, 아크열과 용적 따위로 인해 움푹 파이는 곳)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매일 그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을 보며 종종 나는 태양에 가까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어떻게든 전공을 살려 취업해서 사회복지사로서 현장에 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떻게든 즐겁게 일을 하려 하겠지만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맞닥뜨리는 고충을 내게 토로할 때면 나는 그들에게 묻곤 한다. “너도 특수용접기능사 한 번 따 볼래?” 이 한 마디가 예전 방황하던 나에게 동아줄처럼 내려왔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이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에메랄드빛 희망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업데이트 2021-01-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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