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에 기술을 더해 새로운 복식문화를 피워냅니다
    대한민국 명장 ‘김옥수우리옷’ 김옥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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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수 대표에게 한복이란 전통문화를 계승하되 새로운 변화를 덧대 시대의 흐름을 유연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꿈 따라 펼쳐진 한복 인생 40년
우리 고유의 복식문화를 대표하는 이름 ‘한복’. 그 속에는 수천 년에 걸쳐 내려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과거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한복을 만드는 손길에 신중을 더할 수밖에 없는 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를 재현해낸다는 묵직한 중압감. 그런 면에서 김옥수 명장의 도전정신은 특히 돋보인다.

오랜 전통에 자신만의 기술을 입혀 새로운 한복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 등록된 기술과 해외전시, 패션쇼 등을 통해 숱한 활동을 이뤄온 그는 지난해 한복생산 부문의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지난 40여년간, 한복을 만들어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던 순간이었다.

“어릴 적부터 직접 의상실을 꾸리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양재학원에 등록하게 된 건 다른 이유지만요. 집안형편에 문제가 생겨서 학업을 포기해야 했거든요. 절망감도 느꼈지만 어쨌든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무조건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게를 처음 열었던 것이 1981년인데, 제 솜씨가 제법 괜찮았는지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많이 몰렸습니다. 위기가 기회로 바뀐 순간이었죠.”
 


그런데 한복점 운영으로 경제적 안정을 맞이하며 남은 건 순탄대로를 걷는 것뿐이리라 생각할 즈음 어떤 그리움이 그를 찾아왔다. 미처 잇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던 학업에 대한 갈증이었다. 과연 미래에도 한복사업이 잘 될지, 혹여 감각이 물러져 현장에서 물러나게 되는 건 아닐지에 대한 불안감이 이를 뒷받침했다.

무엇보다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충족하려면, 직원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판단이 들자 더 이상 판단을 미루기가 어려웠다. 결국 늦깎이에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으로 진학한 그는 자식 또래의 학생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패션디자인 공부를 했다.

물론 학업은 한복점 운영을 병행하면서 이뤄졌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 그는 새로운 학문을 터득해 나가며 더 큰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맞춤형 한복으로 고객을
사로잡다

성공궤도에 진입해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한복점에 변화를 시도한 것도 그 이후의 일이다. 그는 이미 한복 제작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였지만, 대학 진학 후 더욱 깊이 있게 관련 지식과 기술을 습득·연구하면서 한복 제조공정을 더 효율적으로 개선할만한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존에 해오던 것처럼 평면에서 옷본을 뜨는 대신, 여러 체형을 구현한 바디모형을 통해 맞춤형 한복을 제작하는 ‘입체제도’ 방식의 제조공정을 도입했다.

“여기 체형별로 구비된 기본 바디모형을 기본으로, 고객의 정확한 체형을 본떠 한복을 만듭니다. 가령 허리둘레가 넓은 고객이라면 바디모형에 솜을 덧대 허리를 부풀린 다음, 이에 맞추어 한복을 제작하는 거죠. 이렇게 만들면 완성된 후 고객이 착용했을 때 뜨는 부분 없이 아주 잘 맞습니다.”
 


체형에 따라 어울리는 한복 모양도 다르다고 믿는 그의 한복점엔 동정이며 깃 등의 샘플만 수십 가지다. 각 고객별 체형의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완화하는 맞춤형 한복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상체는 작은데 얼굴이 큰 사람에게는 동정폭을 평소보다 좁게 만들어 주는 식이다. 고객마다 동정의 각도도 달리 만든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것 같아도 막상 이 작은 차이가 실제 입었을 때 큰 차이를 만든단 사실을 아는 손님들은 요즘도 변함없이 김옥수 명장을 찾는다. 그에게 오랜 고객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복을 제작할 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치수 정보가 있거든요. 저는 그 외에도 목둘레나 상동, 진동 등 치수를 좀 더 세밀하게 측정하는 편이에요. 정보가 촘촘해야 어떻게 체형을 보완할지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파 한다는 자부심으로

학업을 잇지 못한 아쉬움에 시작한 대학생활은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학문으로서 더욱 심도 있게 패션디자인에 접근하고 싶었던 그는 이후 「고구려 고분벽화 복식을 응용한 현대한복디자인」에 대한 연구를 거쳐 종국에는 「감물염색직물의 발색」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으며, 그동안 그의 업무 영역은 더욱 확대돼 궁중복 제작기법 연구, 고분출토 복식 재현 등의 업무를 맡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김옥수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세계무대에 오르는 날이 찾아왔다. 지난 2011년 한국-네덜란드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 패션아트 페스티벌에서 개막쇼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당시 네덜란드까지 옮겨야 할 짐이 어마어마했어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대례복을 비롯해 공주의 혼례복, 상궁의 예복 등 여러 궁중의상과 이에 맞는 장신구까지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죠. 하지만 이날 제가 준비한 무대를 감상해주신 분들이 너무 아름답다며 경탄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그 노고는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았습니다.”

그의 활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전통복식을 재현하고 국내외 한복 패션쇼에 작품을 올리는 한편 미래 한복 전수자가 될 학생들을 위한 취업·진로교육을 진행하고, 산업현장교수로서 패션 관련 기업 재직자들에게 한복 제작기술을 전수하는 등의 재능기부 활동을 활발히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특허 개발에도 관심이 많아 현재까지 등록된 특허권 및 디자인권이 총 22건. 그중에서도 소매와 겨드랑이의 이염을 방지하는 특허권은 관련 기업에서 소유권 이전을 문의해올 정도로 그의 시간과 노력이 깊숙이 배어있다.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워 아직은 상품개발 단계로 진행시키지 못했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면 될 때까지 도전하고야 마는 그의 성격상 언젠가 뉴스를 통해 이 제품의 시장 출시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복은 전통의상이지만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습니다. 90년대 들어 한복 소재가 얇아지며 바느질 방법에도 변화가 찾아온 것처럼요. 바뀌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옛것을 익히되 어떻게 현대에 맞게 적용해나갈지도 고민해야죠. 제가 자꾸만 무언가에 도전하는 건 그 때문입니다.”
 

문화를 계승·발전시켜나가는 일의 묵직한 책임감을 양분 삼아 새로운 변화의 문을 열어가는 명장의 섬세한 손길. 김옥수 명장이 보여줄 한복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해진다. 

업데이트 2021-02-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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