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 핸드폰 부품, 가전제품, 귀걸이, 핸드백 장식까지 도금은 우리 산업과 일상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 기술이다.
㈜현대도금의 윤희탁 대표는 44년이라는 세월을 금속재료 표면처리 분야에 몸담아 온 입지적인 인물로 2020년 대한민국 명장 호칭을 받았다.
명장이라는 명예를 쥐고 표면처리 업계에서 새로운 사명을 갖게 된 그를 만났다.
운명 혹은 우연, 도금을 만나다
도금은 그에게 운명이자 우연이었다. 어려웠던 가정형편에 중학교 학비를 못 내 매일 선생님께 불려가던 시절, 소년은 결국 홀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에 청량리역에 도착한 그는 소위 말하는 브로커에게 걸려들었고 해장국 한 그릇을 얻어먹은 뒤 그대로 도금공장으로 이끌려 갔다.
중학교 1학년 중퇴가 그의 공식학력이지만 사실 윤 명장은 제법 똘똘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손재주도 좋았고 초등학교 재학시절에는 반장도 도맡아 했다. 당시 그의 꿈은 “목장주인”. 담임선생님은 반장씩이나 돼서 대통령이나 장군이 돼야지 목장주인이 뭐냐고 핀잔을 줬지만, 그는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키우고 만들고 이루는 성취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소년은 15살 나이에도 공장 기술자들 눈에 들 만큼 일을 잘했다. 책임감도 있었고 근성도 있었다. 도금하기 위해서는 아침에 기술자들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끔 연탄불로 도금욕 온도를 맞춰 놓는 게 중요했다. 소년은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기 전 일부러 물을 잔뜩 마시고 잠자리에 들어 한 번씩 깰 때마다 연탄불을 갈았고 일하는 내내 단 한 번도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성실했던 그가 공장을 옮긴 건 사수 때문이었다. 자신과 손발이 잘 맞는 조수를 데리고 공장을 옮겨 다니는 게 당시 관례였던 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공장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 회사가 현대자동차의 포니 범퍼를 도금하는 곳이었습니다. 당시에 국내용은 범퍼를 도장했고, 그 외에는 수출품만 도금하던 때였어요. 자동차 범퍼를 도금하면서 비로소 도금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그때가 19~20살 즈음이었지요.”
오직 기술과 품질로 대결하다
현대산업에서 도금은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업공정이다. 철을 도금하지 않고 그냥 두면 녹이 슨다. 전자부품은 전기가 잘 통해야 하니 금·은·동 도금이 필수다. 항공기 엔진에 표면처리를 하지 않으면 금세 부식되고 오래 날지 못한다. 수명을 늘리고 더 나은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도금 표면처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000년, 마침내 자신의 회사를 차리게 된 그는 망설이지 않고 이름을 ‘㈜현대도금’이라고 지었다. 포니 범퍼를 도금했을 때의 자부심, 자기 일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된 것을 기념하는 이름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의 모든 기술은 진화한다. 도금 표면처리 기술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철에다 도금했지만 지금은 신소재가 쏟아져 나온다. 당연히 도금기술도 달라져야 한다. 니즈는 다양해지고 더 까다로워졌다. 윤희탁 명장이 지금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이유다.
㈜현대도금은 대형 설비를 갖추고 대량생산으로 매출을 내는 회사는 아니지만, 까다로운 도금작업이 필요할 경우 각 기업이나 연구소, 정부 기관 등에서 가장 먼저 찾는 회사 중 하나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현대도금에는 영업부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거래처에 일을 달라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좋은 품질, 합리적인 가격으로 거래처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주고 그에 합당한 가치를 얻어왔을 뿐이죠.”
그의 말은 도금기술에 대한 자부심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명성은 그렇게 국내를 넘어 해외로 뻗어갔다.
지식으로 살 것인가,
지혜로 살 것인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2010년 일본 T사에서 전자부품에 사용되는 페라이트저항 부품 생산을 의뢰했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2시간 30분씩 작업하던 도금공정이었다. 그런데 윤희탁 명장이 그 공정을 12분으로 줄였다. 믿기지 않는 혁신이었다.
“1년 몇 개월을 연구하고 테스트했습니다. 집에서 겨울복장으로 나왔는데 실험실에서 먹고 자고 하다가 밖에 나오니 그새 개나리가 피었더라고요. 하하.”
그의 도금기술은 평창올림픽에서도 빛을 발했다. IOC 규정에 맞춘 금메달 도금은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맞춰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임에도 그는 6g의 금을 올리면서 메달 전체에 동일한 컬러와 광택을 내는 데 성공했다. 기술과 관련한 그의 철학은 하나이다.
“넘지 못한다고 안 갈 수는 없습니다. 넘지 못하면 부수고 나가면 됩니다. 내가 못하는 거지, 기술이 없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평생 그 신조로 살았습니다.”
명장이 된 지금 그는 막중하지만, 행복한 사명을 갖게 됐다. 자신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고스란히 후진들에게 물려 주고 싶다는 것이다. 윤 명장은 이를 위해 일학습병행을 도입했고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직접 참여해 노하우를 익혔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학생들과 직원들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윤희탁 명장에게 “도금 표면처리 직종은 3D 업종인가?” 묻자 그가 반문한다.
“‘지식으로 살 것인가?’, ‘지혜로 살 것인가?’ 세상 모든 사람이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오를 수 없어요. 하지만 가치는 스스로 끌어올릴 수 있지요. 금속재료 표면처리 직종은 오직 실력으로 평가받는 당당한 업종입니다. 내가 원하는 날까지 현장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직업이지요.”
인터뷰 내내 그는 시종일관 명쾌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도금기술 명장이 갖는 명예로부터 비롯된 것일 터였다. 윤희탁 명장이 이끌어갈 대한민국의 도금표면처리 기술. 그 빛나는 미래를 기대해본다.
약력
2000 ㈜현대도금 설립
2009 제17회 생산기반기술경기대회 대상
2016 제24회 전국표면처리기술경기대회 금상
2016 표면처리 기능장 획득
2017 우수숙련기술자 선정
2018 기능한국인(142호) 선정
2018 평창올림픽 금메달 제작
2020 대한민국 명장(표면처리) 선정